당신의 시 '윤인미 시인'


윤인미 시인의 詩 청량한 감옥 외 4편

윤인미 시인의 약력

경기 수원 출생

2013 년 계간 시와 미학으로 등단 .

시집 물의 가면』『채널링

 

청량한 감옥

 

우리는 저마다

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있다

타인의 그늘에 많이 가려질수록

나무는 잘 자란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경계에 서 있으면 시들지 않는 나무

목을 빳빳이 세워

기억에 박혀 본다

 

안목이 좁은 어제를 꺼내 입고

말라비틀어진 그늘을 놓지 않는다

 

색에 들뜬 나무의 이마를

종일 짚어 주던 바람 ,

텅 빈 눈동자에 눈부신 이마를 부딪친다

 

그때 나무는 양손에 바라처럼 포개지는

시공 (時空 )을 쥐고

나무 (鑼舞 )*를 춘다

 

구부정한 기억이 가지처럼 닿아 있어도

구부려 앉힐 서로의 몸이 없다

 

*바라춤

 

 

 

 

길고양이 , 루시

 

각진 기분이

나를 살짝 깨물면

몸에서 별이 뛰어나온다

 

나는 내가 소용없고

 

밤하늘만 필요한데

 

어쩌자고 나는

나만 긁어댈까

 

       *

 

잠긴 문을 좌우로 비틀며

의심하는 눈 ,

베일 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잘게 쪼갠다

 

눈꺼풀은

눈을 버리고 어디로 사라진 걸까

골목을 물어뜯고 있는

어둠은 남아도는데

 

       *

 

눈뜬 시체처럼

밤이 없는 상처

 

살아도 죽어도

온통 담장뿐이다

 

 

 

 

2

 

  대부분의 그녀는 * 대부분 잘 먹는다 한통속이다 그녀들 중심에 서면 갇힌 바람이 뼈와 골수를 파먹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의 그녀는 대부분으로 읽히는 것을 싫어한다 피었다 지는 꽃처럼 그러나 이름은 서랍 속에 두고 다닌다

 

  대부분의 그녀는 대부분의 을 과녁으로 인식한다 과녁은 자신의 결핍을 추궁하는 눈빛 . 눈빛이 강할수록 입에서 쏟아지는 화살로 심장을 맞힌다

 

  대부분의 그녀는 대부분의 봄볕처럼 킥킥 웃는다 웃음소리는 말에 찍힌 앓는 소리 푸성귀 같은 상처가 여기저기서 웃자란다

 

 

  대부분의 그녀는 대부분의 그에 의해서 보호받는다 대부분의 그는 중요한 순간에 자리에 없다

 

  대부분의 그녀는 대부분의 그녀를 용서해야만 살 수 있다 이름을 호명하며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개괄적으로 용서한다

 

 * 이수명 시인의 대부분의 그는에서 빌림

 

 

 

 

 시큼하고 비린 것들

 

 

  매일 넥타이를 매기 위해 자신의 목 조르기 .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안으로 오다가 주춤거리는 발소리 들어오면 문 열어주기 . 꽉 조여진 나사는 더 조이지 않기 . 지나치게 사랑스럽거나 지나치게 얄미운 사람은 별수 없이 지나치기 . 둘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나머지가 되는 것 깨닫기 . 그림자를 쫓다가 따로 모양이 있는 것 기억하기 . 죽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죽지 않기 . 부처가 죽었듯 엄마도 죽을 것 생생히 기억하기 . 나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숨기기 위해 숨은 나를 색출하기 . 있는 힘껏 당신을 밀어내기 위해 당신이 존재하기 . 타임캡슐처럼 고스란히 나를 간직하기 . 그러나 내가 만든 이야기와 내가 너무 가까워 더는 숨을 곳이 없을 때 천지는 온통 길뿐

 

 

 

안경    

 

딱 나만큼 안타깝습니다

그 단순함이 쉬워서 겁이 납니다 

밖을 내면화하는 데 실패한 꽃잎입니다

왔던 길을 낯설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장밋빛 나를 지나치지 못해

압화 같은 감상에 갇힙니다            

이제는 꽃의 환란에 시비 걸지 말고    

높고 낮음에 갈증이 없는

한 뼘의 하늘을 담겠습니다      

 

앞서간 길과 지나온 길이 보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