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김진수 시인'

김진수 시인의 詩 범종 외 4편

김진수 시인의 약력

2016년 시와세계 여름호 신인상 등단

2019년 대구 매일 시니어문학상 시부분 당선

2020년 해양문학상 장려상 수상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동인

전망 동인

강서문학회 회원

시집 설핏』 『꿈 아닌 꿈

 

 

 

범종

 

 저보다 더 큰 입이 어디에 있으랴! 하늘로 향하면 욕심이 커질까 당초문 치맛단 아래 없는 듯 숨기고 세계를 품는다.

 

 저물녘, 새벽에 풀어 놓았던 것을 불러드려 다시 품는다. 밤새 품은 세계가 소리가 되는

 

 한밤중, 귀 기울이면 생황, 수공후 * 소리 들리는 듯 들리지 않아 요사채 문고리는 몇 번이고 달그락거렸다.

 

 새벽녘, 밤새 품어 숙성시킨 세계를 풀어 놓는다. 퍼져나가

 

 하늘이 하늘 되고 ,

 바람이 바람 되고 ,

 새가 새 되어 날갯짓하는

 하루.

 

 귓전에 맴도는 소리 한 움큼 잡아 맛을 본다 .

 밤새 문밖이 자그락거리더니 저 종도 나와 같이 잠을 설쳤는지 덜 익어 떫다.

 

 새벽을 밟아 달마산 ** 넘어가야 하는 걸음은 헉헉거리고

 큰 입 아래 묻혀있는

 작은 항아리 속에는 소리가 되지 못한 마음만 그득하다.

 

* 범종 몸체에 새겨진 비천상이 연주하는 악기

** 전남 해남군에 있는 산. 미황사가 있음

 

 

매듭

 

 네가 묶으면 내가 풀고

 내가 묶으면 네가 풀고

 

 심중에 맺힌 매듭은 어찌할까? 도려내지도 그냥 두지도 못할

 

 매듭은 풀어야 할 오해이며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야 묶는 방법은 수십, 수백이지만 결국은 풀리지 오해도 마찬가지, 마음을 다하면 꽃으로 피고 나비처럼 날아오르지 때론 올가미도 되지만 그건 몇몇 사악한 것들의 심성일 뿐 매듭의 마음은 아니야

 

 매듭을 짓는 실 올올이 물들이고 여럿을 꼬아 한 인연 안에 든, 색색인 저 고운 천연의 빛깔 거기엔 우주가 녹아 있지 매듭이 되어본 꽃과 나비는 알아 이슬 머금은 바람과 햇살에 꽃이 피고 눈물과 땀이 밴 달빛에 죽은 나비가 춤춘다는 것을  

 

 조급해하지 마! 신탁은 없어 애써도 풀리지 않는 오해가 있다면 그건 너무 단단히 묶은, 꼬인 다른 한쪽의 감정 때문이야 미쁜 눈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마리가 보일 거야 빛이 들어오는 작은 틈, 거기를 살살 간질여 봐 하늘이 보이지 본래 오해는 일란성이야 얽히고설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 고약한 습성을 이용하면 어떤 매듭도 쉽게 풀 수 있어 오해의 끝을 잡은 두 줄은 늘 자기만 보려 해 스스로 빗장을 거는 거지

 

 옛이야기처럼 칼을 쓰면 안 돼 부드러운 바람이 외투를 벗기듯 짓고 푸는 전제(前提 )는 사랑이야 그냥 사랑해, 푸는 것은 더 아픈 삶의 몫이니까  

 

 풀려 하지 않는 것은 외로워서 그래, 외로워서 더 옭아매는 거야 그러니 하소연 아니 말하면 그냥 귀 기울여 줘 그거면 돼

 

 우리는 너무 바빠

 맺히기 전에 곁으로 가야 하는데 풀고 갈 매듭은 너무 많고

 해가 너무 짧아

 나비가 되고 꽃이 되기에는

 

 

 

바람이 없어도 돌아야 하는 바람개비

 

 몇 번을 더 덖어야 탁한 울음 버리고 맑은 웃음 우려낼까? 제 가슴 치며 울다 찌그러져 홀로된 여정을 털어놓는 탬버린, 밤을 하얗게 밝혀야 안식에 드는 도우미라는 주홍 글씨로 사는 그녀, 둘은 닮은꼴이다  

  

 노래방은 방편일 뿐 답은 아니었다. 돈 아닌 듯 호기롭게 혹은 치사스럽게 꽂아주는 지전 몇 장. 그 게 답인 양 마시고 부르고 두드린, 불규칙적으로 돋는 소름을 손가락으로 다독인다. 동그라미에 사로잡힌 허공, 주행선을 벗어난 박자가 겅중거리고, 혀 꼬인 가락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혓바닥 밑에서 부화한 소문은 소문을 낳고, 꼬리를 잘라내지 못한 가면을 쓴 무당벌레. 메슥거리는 속 쏟아내면 선명해질까 하고 끌어올렸는데 더 탁하다. 은근짜로 귓속을 헤집는 유혹 속

 

 엇박자인 아버지 기침 소리 박자를 놓치고 등록금 고지서가 불협화음이다.

 

 후회가 같은 방향으로 돌고 돈다. 한 발만 내디디면 끝이다 싶은, 늘 벼랑 끝이었다. 내일이 있다는 자위(自慰 )는 처음 바람을 맞을 때 가능할 뿐 바람에 취하면 바람개비는 바람이 없어도 돌아야 한다.

  

 탬버린이 소리 내는 것과 바람개비가 도는 것은 가슴이 없기 때문이다. 문자 받을 때마다 벽을 쌓지만 다짐은 다짐일 뿐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스물셋, 이 꽃 꺾어줄 바람 어디 없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