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서금숙 시인'


서금숙 시인의 詩 파꽃일기 외 4편

서금숙 시인의 약력

<시문학 > (2019) 등단 .

14 회 부천신인문학상 수상 (2017 )

부천문인협회 회원 , 부천여성문학회 회원 .

 

파꽃일기

 

아내가 어머니의 파김치 맛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칠순 잔칫날 가족사진 한 장 찍는 소원을 이룬 어머니 , 원자력 병원 암 병동에 파를 심었다 불철주야 피 주사로 콕콕 찔러 온몸에 파꽃을 심었다 둥근 파꽃이 툭 터진 실핏줄 멍울마다 파랗게 애린 파를 심었다 밭에 나가 팟단을 묶고 , 발목을 묶고 , 매운맛이 싫다는 아들에게 파김치를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파꽃 하얗게 피던 날 어머니의 몸속 백혈구가 피를 말렸다 어머니가 밭에 머문 시간을 잊고 지냈을 자식들은 밤낮으로 오래 머문 그녀의 흔적을 뿌리째 뽑았다 팟단을 묶느라 오그린 무릎이 파열음을 냈다 내가 길고 튼실한 큰 파와 작은 파가 꼭 붙어있는 쪽파를 사왔다 파김치가 아린 맛을 내는 봄이 될 때마다 아내는 파꽃을 피우는 어머니가 된다

 

 

 

능이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을

너를 위해 능이백숙을 끊인다 

너는 편의점에서 사 온 구구콘을 

비둘기처럼 다정하게 준다

구구절절 삼가라는 대도

너는 편의점 캔맥주를 자주 사 들고 있었다

아이가 맛있는 거 먹을 때 무슨 말이 더 필요하지

코로나만 조심하면 

네가 준 것은 다 맛있다고 했다

참나무 뿌리에 착 달라붙어 사는 

곰팡이 포자가 길을 잃고

집에 콕 박혀 사는 네게 와 기생한다 

그러나 능이

처음에 상승하더니

가루가 되고

반죽이 되고

미끄러지고

점점 평평해진다

네 몸속 어딘가에 자생하는 능이

꿈꾸던 너의 숲으로 가라

너의 일을 찾으러 가라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 *

양 떼를 몰고 갈 초원

뜻이 있는 길에서

별처럼 아름다운 일을 하는 목동아

뜻하지 않게 새로운 일도 주신다

귀한 너를 위해 

능이백숙 펄펄 끊인다

불가능한 능이 네 몸에 굳힐 일

아예 없다

 

 *프란시스 잠의 시에서 차용함

 

 

 

는개는 못의 혈족이다

 

오 분 정도 배회하니

여린 비가 못이 된다

 

허리 휜 버드나무에 꽂혀 바르르 떠는

그렁그렁한 눈물로 맺힌

시퍼런 는개는 못의 혈족이다

 

부스러기처럼 부서진 노여움

버들잎에 흘러내려 곤두박질하는 못

연못 위로 떨어졌지만

절개가 굳건하지도 못해

수면 위로 떠돌다 는개가 되었다

안개처럼 흩어져 천지사방에 내리꽂힌다

 

안개비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 가는

어중간한 사연이 녹슨다

 

제대로 못 박힌다는 것은 뭘까

바닥을 찍고 일어서면 연꽃

열매가 괴악하고 단단해질 인연이

연꽃에만 허락되어 연분홍 꽃망울이 맺힌다

 

바닥을 파는 습성을 가진 잉어가 부럽다

젖어도 녹슬지 않는 가장 오래된 못이 되었다

 

우산도 없이 서 있게 하는 비

는개마저 부럽다

더러 못이 되었다

 

피가 통하면 는개도 못이다

깊이 못 박힌 뒤라야 샘이 솟는

그치지 않으니 단비 가 될 수 있는

 

 

 

푸근한 갈대

 

잿빛 구름 여럿 사귈 푸근한 들녁에

소금창고가 잡목처럼 서 있다

키를 훌쩍 넘긴 갈대를 보니 설렌다

홀연히 걸어 들어간 여인의 뒷태가 

구부정하든 부스스하든 괘념치 않는다 

보면 볼수록 무덤덤해 더 끌리는 갈대

가죽 잠바를 걸친 미남 배우도 아닌데

갈대를 보다 넋을 빼앗겼다

다시 오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며

갈대 한 줌 꺾어 가려 하니 끊어지지 않는다

언뜻언뜻 물빛 바람에 산발한 머리가 휘날린다

속눈썹을 파르르 떠는 

스웨터를 곱게 걸친 갈색 여자

따끈한 모과차 한잔을 나누어 준 갈대

갈 때를 아는 갈대

영화의 마지막 자막처럼 지지직 운다

 

 

 

 

'붐붐 '

 

바람 든 오렌지가 가벼워지네

골다공증이 있다고 바람의 전언을 들은

나도 가벼워지네

 

오렌지 속처럼 빼곡하게 붙어있던 집이 가벼워지네

뼈를 묻겠다고 다짐했던 사람들이

하느님보다 더 무서운 이사명령서를 받고도

죽자 살자 버티다가 새들처럼 하나둘 떠나갔다네

 

불도저 다섯 대가 뉘를 가려내듯

흙을 척척 가볍게 털고 있네

사거리 불빛이 보일수록

버스가 다니는 골목이 훤해질수록

학교의 낮은 건물이 높아질수록

떠나간 사람들의 공간에 태어난

비움의 자리가 낯설었다네

 

분양 완판을 외치던 뉴스가 설탕처럼 달곰해지네

모델하우스에 사람들이 줄을 선다네

비우면 채우고 싶은 마음이 풍선을 달고 오네

고공의 바람이 ''을 일으키네

붐비는 동네를 만들려고 하네

 

떠나간 자리에 벌떼처럼 붐붐쐐기를 박는 바람

골다공증 뼛속에도 쐐기를 박고 있네

전염병처럼 번지는 허전함

말라가는 오렌지 속으로 잦아들고 피할 수 없는

가벼움이 전염병처럼 번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