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전순복 시인'


전순복 시인의 詩 골목 외 4편

전순복 시인의 약력

 부산 출생

에세이문학수필 등단

시와 소금시 등단

만다라문학상수상

한국음악저작권협회회원

한국가요작가협회 인천지부회원

 

골목

                           

술에 먹힌 젊은이가 두 다리 뻗고 앉아

-어머니 아버지 왜 나를 낳으셨나요 . 한도 많은 세상 길에 눈물만 흐릅니다
노래와 통곡이 버무려지던 길

 

대보름날이면
깡통에 불을 넣어 돌리는 아이들이 반딧불처럼 날아다니던 길

 

용케 집을 찾아왔으나 골목 입구에서 쓰러진
아무개 아비를 발견한 아무개 어미가
-저기 아무개 아비가 쓰러져있네
알려주어
치마폭에 한숨을 닦은 어미가 큰 자식을 데리고 내려가
술에 먹힌 아비가
양 날개에 식솔을 걸치고 비척비척 올라오면
쌀독보다 그득한 별을 거느린 눈 밝은 달이 빙그레 웃어주던 길

 

가난을 등에 진 남자들의 헛기침 소리와
고물장수, 엿장수 찹쌀떡 메밀묵 장수들이
머리에 어깨에 가난의 방물을 지고 흘러가던 길

 

숨 가쁘게 먹이 물어 나르던 어머니 돌아가신 이듬해
소방도로에 입적되어
사리하나 남기지 않은 길

 

 

 

 

벌레의 집은 아늑하지 못하다

 

구청 앞 둥근 화분에

고깔 모양 이엉이 씌워졌다

 

추위를 피한 벌레들이

제 집이라고 , 제 살 곳이라고

기어들었다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아니, 짚더미가 우주인 그들에게

봄은 이미 와 있었기에

-추위를 피해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갔던 노숙인이 차량에 치여 숨졌는데 160 센티에 마른 체구의 노숙인은 뒤통수 왼편이 함몰되어 있었다 경찰이 CCTV 를 확인한 결과 노숙인이 발견될 때까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 차는 모두 4 대이며 모든 차량의 타이어에 혈흔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

 

벌레의 집은 아늑하지 못하다

 

 

 

 

숨결이 떠난 풍경

 

장독대 정화수에 수많은 새벽별이 다녀갈 동안

열아홉 흑단 같던 머리카락이 백로가 되어버린 노인

 

할미꽃 같은 허리로 앞뒤 남새밭을 다니고

항아리 뚜껑을 여닫으며 햇빛을 그러모을 동안  

우물과 아궁이의 가슴도 일렁거렸다

 

노인의 기척에 귀를 세운 것들이

일어서고 찰랑대고 넘실거릴 때

여기저기 관절통을 앓는 집 도 달그락달그락 몸을 움직였다

 

봄이 고치를 열고 태어날 무렵

수수깡처럼 가벼운 노인이 폐가에서 빠져나오자

오랜 세월 관절염을 앓고 있던

문짝과 마루, 우물과 아궁이도 그만 숨을 놓아버렸는데  

 

남새밭 한 귀퉁이 주인 잃은 대파들

상주 노릇한다며 흰 머리핀 꽂고 있다

 

 

 

 

호랑나비 저울

 

                                                         

날개를 펼쳐 봄의 무게 재어 본다

 

아지랑이 반 근, 햇살 반 근

양쪽 날개의 균형이 맞다 이만하면

잘 익은 달콤한 봄이다

 

숲이 향기로 말을 걸었을 때

날고 싶어

허물벗기를 거듭해도 하늘은 열리지 않고

정중동 靜中動숲에서 화두 하나 들고

불안전한 허공에 운을 걸었다

 

예리한 화두로 등가죽 뚫어

허공에 첫발을 내딛는 날갯짓은

의 결구 結句로 가는 문장

 

농익은 봄의 무게 가늠하는 수평의 날개

뻐꾸기 울음소리 반 근에

휘청,

산이 기우뚱 봄이 흔들린다

호접몽이 흔들렸다

 

 

 

퇴화하는 입

 

너의 입김이 불안해

너의 숨결이 두려워

기침도 하품도

 

립스틱 공장이 코로나 균에게 치명상을 입었다지

그 때문에

지금은 불신의 시대라고 속내를 뱉어낼 입이 사라져 버렸어

 

장대비 속에서

환호하던 젊음에게 신이 되었던 무대 위 그 남자는 환영이었을까

그의 눈짓 하나 손가락 하나에 피어나던 수많은 붉은 입술

별에 닿을 듯 솟구치던 그 활화산은 신화가 될지도 몰라

 

물속처럼 고요한 전철 안에서 유일한 입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뿐

 

이제 저 발랄한 입술은 유혹이 아닌 불안

로 퇴화 되어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