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전지우시인’

전지우시인의 詩 구름 병동에서 외 4편


전지우시인 약력

 

강화도 출생.

경기대학 가정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전문가 과정 수료.

2021<열린시학> 신인상, 2021<글로벌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233월 시작시인선 0460으로 시집 당신이라는 별자리 하나출간

 

 

 

구름 병동에서

 

이 뭉게구름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구름 침대

구름 숟가락과 젓가락

구름 이불과 구름 신발

 

구름 병동에 가면 내가 누구인지

나의 피가 차가운지 따뜻한지 알 수 있다나 뭐라나

 

조약돌에서 나온 구름도 있지만

만년필 끝에 맺힌 구름도 있었지요

 

당신의 몸엔 구름이 너무 많군요

지평선에 빛을 흩뿌리는 노을이 필요하군요

 

구름들은 제 입술을 깨물고 있답니다

긴 침묵도 약속인 거죠

머리통을 오므린 구름만이

저 산과 강을 지나 구름 병원으로 갑니다

 

잿빛은 역광의 그림자 같아요

서녘이 쏟아져요

 

구름은 맴돌아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서 

어스름 속으로 스러져가요

번개의 목울대가 움직이면

구름의 목소리가 호명하는 당신을 만날 수 있어요

 

 

 

창문, 창문, 창문

 

창문은 어디로 가도 창문, 창문에 비친 마음을 생각합니다

 

, 방울, , 방울, 왜 방울 가진 것들은 사선으로 떨어질까요

 

링거는 작은 초침인지 모르겠어요

당신의 오줌주머니는 오늘도 노랗군요

 

 창문은 내게 화폭 같아요 땅끝 바람과 물과 유자를 뭉개고 싶어요 저것들을 섞으면 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있을까요

질감 따위 상관없어요, 나는 불면과 멀리 떨어지고 싶거든요

 

 삶을 질질 끌고 가는 것은 환자복의 밑단 같아요 오천 원짜리 슬리퍼 같아요 발등 옆구리가 쉽게 뜯기니까요

 

이 창문엔 어떤 비가 와서 빗금을 내는지

사랑을 바라보게 하고 죽음까지 엿보게 할까요

 

 창밖은 빗소리만 잦아들어요 작은 잎사귀들이 비의 혈관에 바늘을 꽂나 봐요 나의 눈빛이 지그시 떨리네요 비는 사선, 눈물은 수직으로 떨어지네요

 

 

 

 

동쪽, 저 매화

 

호스피스 동쪽엔 매화가 붉어요

동쪽으로 가까워지는 방은 매화 너머에 있어요

봄가을 없이 두 개의 계절을 입과 코와 눈에

달고 사는 당신, 죽음을 잘 읽는 책인가 봐요

 

성품이 곧았던 책이 허물어지고 있어요

몸에 기생하는 날씨가 각질을 만들어요

죽음을 벗을 날이 옷을 입는 것처럼

힘든가 봐요 소변주머니만이 노란 달개비 같아요

 

며칠 전만 해도 나는 두려움을 찢는 용기가 솟길

기도했어요 동쪽으로 가면 숨이 도굴된다지요

당신은 양팔로 찌그러진 하트를 그려놓곤 했는데요

 

나는 데구루루 굴러가는 화병처럼 깨지고 싶었어요

마음을 깨트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음악치료사는 감정을 들키지 말라 하였죠

 

개관 호스로 가늘게 드나드는 사흘 낮밤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주었죠

당신은 죽음마저 놓아주지 않았죠

가장 먼저 귀는 소리를 썩게 한다죠

두서없는 말을 꺼내지 않도록

동쪽, 저 매화, 내 눈에서 터진 실핏줄이었어요

 

 

 

 

자목련의 노래

 

담장을 타는 것은 봄이 아니라 자목련이었다

 

자목련 꽃 속엔 골목과 집이 있다 응급실 가는 저녁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점점 야위어가는 피부처럼 나무는 흰색이 아닌 자색빛으로 주머니를 짓는다

내가 당신의 약봉지 알약에 집중하는 동안,

 

주머니는 왜 입 모양으로 피는 걸까

먹구름 속을 다녀온 번개의 입술 같다

 

오늘도 나는 당신의 등이 왜 뒤척이는지 묻지 못했다

봄밤이 조금씩 구겨놓은 것은 꽃잎도 바람도 아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진실에 가까이 닿을 수만 있는 마음이다

 

저 자목련은 휘파람을 부는 것인지, 그림자가 부풀고 있다

 

습한 것이 담장 밑의 눈뭉치를 녹이고 있다

끈끈하게 달라붙은 달빛처럼 한번, 담장이 출렁거린다

 

더 이상 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목련을 통해 보는 세상이 있다

 

나는 당신과 함께 밖을 내다본다

숨이 공손해지는 밤이다

당신의 병은 깨지지 않는다

자목련이 무한히 열려 있는 곳,

우리는 공중에 담장을 내며 살고 있다

 

 

 

 

가침박달나무 남자

 

꽃덩어리 같았다 나의 남자는

 

수저를 쥘 힘이 필요했다

작은 얼음덩이가 뿌리를 짓누르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나를 몰라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순간, 얼굴에 핀 꽃빛이 예민해진다

누구는 그걸 저승꽃이라고 고백했지만

나는 기침하는 박달나무 꽃이라고 불렀다

 

나는 남자에게 물을 준다

조갈증 탓이 아니다

저 푸석푸석한 나무도 죽기 직전 꽃을 피우는구나

고열이 떠서 꽃방이 생기듯

하얗게 몰려가는 숨소리를 나는 알지 못한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물관도 있으리라

길을 잃고 말들을 삼키는 벌레들도 있으리라

 

언제 깨어나 줄기를 흔들지 모르는

 

나의 가침박달나무 남자,

내게 가슴팍을 후려치는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왜 당신은 순종적인가

당신의 손길은 왜 끊임없이 반복 중인가

어서 잠들라

다시 돌아오지 말라

바위 곁을 지키는 나무가 되는 거라고 말해주지 않아서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지만

가침박달나무는 나를 볼 수 없어 꽃눈을 피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