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이경애시인’


이경애시인의 詩 견고한 새벽 외 4편

이경애시인 약력

 

2013현대시문학등단

춘천 사는 여자

시집 견고한 새벽

 

 

견고한 새벽

 

나는죄가 많아 눈물이 많아......

 

그림자도 없는 새벽

외등을 지고 앉아 페지를 고르던 노파가

느릅열매 같은 혀를 내밀고 눈을 받아 먹습니다

나를 보고 민망한지 빙그레 웃습니다

세상에 저런 천진한 웃음이라니!

무구한 꽃이 하늘하늘 피어나고

 

아직 따뜻한 혀로 녹인 눈물이

나비되어 날아갑니다, 팔랑팔랑 

팔랑팔랑 날아가 하느님을 깨우고 

선잠 깨신 하느님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십자가를 먼저 닦습니다

별보다 많은 하느님들

여기저기서 깨어나시는데

찢기고 더럽혀진 폐지를 기도서처럼 

수레 위에 모시고

견고한 새벽을 끌고 가는 노파의 뒤를

슬그머니 밀고 따라가며 나는 또

죄지은 것만 같아.

 

허름하고 누추한 사마리아 여인의 어깨 위로

눈은 또 나립니다

눈은 또 쌓입니다

 

 

 

 

그대의 선한 눈물이

나의 왼쪽 가슴으로 들어와

측은한 내 심장을 에둘러 흐르는 동안

나는

조금씩 솟아올라

그대의

섬이 되었다

 

 

 

자줏빛 살 속에 피는 무화과꽃처럼

 

애련의 서술에 지친 지상에는 비가 내리고

무화과 잎 몇

더는 모색할 수 없는 삶이라는 듯 저보다

더 쓸쓸한 벌레 울음 며칠 다독여 놓고

꽃 없는 목숨을 끊는다

 

다홍빛 립스틱을 지운 것처럼

아주 잠깐 세상은 어두워지고

 

남도로 떠날까, 민낯으로

 

어느 해가을

단 한 번 이별했을 뿐인데

자줏빛 살 속에피는 무화과꽃처럼

수천 송이로 피어나는 너

해남 어디쯤

살고 있겠다던 너

 

 

 

명자꽃은 지고

 

붉은 심정 떨어져

서풍에 다 마르도록

그 이름 나즉히 호명 한 번 못했구나

 

봄에 피어난 꽃 봄빛에 이울고

사랑에서 건진 사람 사랑에 빠져 죽고

 

꽃보다 붉은 마음 한 장 펼치고

 

나앉은 마루 끝으로

한 잎, 또 한 잎

명자꽃 날아드는데

비워진 가지 끝 가만히 보니

,

저 새파란 결자부缺字付!

 

마루 쪽으로 휜 꽃 진 가지 끝

이름 하나 지우다 곪은 손 끝

울혈 들어 검붉은 명치 끝

, ……

명자꽃 하나 지는데 세상의

모든 끝이 

득도 하다

 

 

 

 

 

 

당신의 문

나비경첩, 이제는

날지 않습니다

구절초 꽃잎 몇, 문살 따라

띄워놓습니다

 

언제나 당신은

노을을 은유하다

밤이 됩니다

하얀꽃

아홉 마디에 무서리치는

 

당신이

남겨 놓으신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