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김정화시인'


김정화시인의 詩 낳다 외 4편

김정화시인 약력

 

의성 출생

2021문장21시 등단

시집꽃의 실험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간지원)선정(수필부문)

 

 

낳다

 

하얗게 아프다가 불꽃처럼 흩어졌지만

다 열릴 때까지

하늘빛 말을 적어 보았다

 

그가 코 문을 밀고 들어왔다

 

방금 온 헌책에 붙어왔나 하다가

해넘이가 유리창을 달궜나 했다

 

화끈거리는 손목

하늘에 스민 바람을 불러낼까 보다

 

불길이 하늘을 끌어당겼다

 

허리 굽고 푸릇하고 비릿하다

울면서 와락 안긴 산안개 냄새

 

터진 구름 둘레로 서녘을

끌어안고 아랫물을 쏟았다

 

뜨겁게 앓았다

 

아뿔싸,

노을이 시를 낳는다

 

 

 

꽃의 실험

 

소리마디가 가득한 길턱에서

겨우 하나 받았다

 

5, 4, 3, 2,

1,

 

0.5

하얗게 덮어쓰고 앉은 침묵

 

아름다운 꿈길에 앉아 새가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뽀글 파마 정거장에서 헤맸다

저마다 별로 가려고 몸을 싣고

지그시 눈 감고 별맞이 기차를 탄다

 

스치는 이 하루만을 본다

꽃을 여는 길

 

이곳이 그리운데 멀리 와 버렸다

뚜껑을 열자

 

사십 분짜리 꽃봄

하늘과 땅 사이, 꽃 덤불 핀다

 

 

 

누에고치

 

그래요, 아버지

그 실만은 끊지 말고 작은방에서 숨 쉬어요

 

골목을 돌아가다 담벼락 살피꽃밭에

올망졸망 달린 오디 보니

어릴 적 내가 뛰놀던 언덕집이 보여요

 

겨울이면 토끼랑 꿩도 잡던

흰 눈이 뒷산 솔가지에서 빛나고,

윗방보다 누에방이 더 크던 흙집에

오무락오무락 움찔대던 하얀 누에

 

나는 깨금발로 용쓰며 누에를 쳤지요

앓는 아버지 머리에 시퍼런 오디 물들고,

하늘처럼 살리는 뽕나무도 덧없어

저승사자처럼 지켜보네요

 

그사이 두고 내내 집 짓다 들어앉은

뽕잎 먹고 고치 치는 누에보다 더 부지런한

무명실 뱉어내는 아버지

 

깡마른 몸 누에고치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몸을 구부리고 쪼그라들려 하다가,

 

아버지가 병실에서 누에실을 짜요

멀뚱멀뚱한 눈망울이 뽕나무에 걸렸어요

 

 

 

구름 가족 관계 증명서

 

그 사람 하늘 구름에 알린 지 닷새가 되는 이른 아침

 

나는 동사무소에 들렀다

이 세상 남은 자국이 지워진 그 사람 빨간 수평선

김상우 사망

 

내 가족 관계 증명서에 두 글씨가 끼여들었다

이 세상 모든 강줄기만큼 멀어진 사이

 

그렇게도 일찍, 그 사람을 찍어내고 싶었을까, 이 땅은

그 먼 곳 바람 호적에 그렇게도 빨리 올려주고 싶을까

 

그 사람 하늘에 알린 지 닷새가 되는 이른 아침에

 

 

 

지하철

 

휠체어 바라보다 길을 잃었다

 

밖은 개나리가 피어 한창인데

, 지하철

 

한 곳을 지나 빨간 전동차가 탄다

검은 옷이 문 옆으로 붙자

짙은 어둠이 또 달리고

곁눈질 여자 휠체어가 뒤로 내린다

 

잠깐만요, 매화, 타야 해요

 

커다란 얼굴인 남자 휠체어가 탄다

눈처럼 쌓인 비듬은 통화하고

 

복판을 가로막은 커다란 휠체어 바라보다

 

안개와 안개 사이 문이 닫힌다

아차, 반월당에 매화 두고 왔다

 

휠체어 탑승 61 출입문

그 낯선 명덕역에서

이쪽저쪽 왔다 갔다

 

휠체어를 바라보다 봄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