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박경순시인’


박경순시인의 詩 국수 외 4편

박경순시인 약력

1991意識으로 등단. 한국수필신인상, 인천예총 예술상, 24회 인천문학상, 27회 전국성인시낭송대회 최우수상 등 수상. 인천문인협회, 내항 동인으로 활동. 울진 및 평택해양경찰서장 역임. 시집 새는 앉아 또 하나의 를 쓰고(1997), 이제 창문내는 일만 남았다(2002),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2012), 그 바다에 가면(2019)이 있음.

 

국수

 

국수하고 말하면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국수 한 그릇

국물 한 사발

밥보다 많이 먹던

시절

 

!

아버지

 

국수를 덜어주려면

그릇과 그릇을

붙여야 한다

 

그대에 나눠주듯

어깨를 바싹 붙여야 한다

 

내 어린 시절

한 끼 식사로

허기진 가슴

넉넉히 채워 주었던

국수

한 그룻

 

그리고

 

 

 

9, 후포 밤바다에서 가을을 만나다

 

가을은 소리로 다가왔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그리움을 울컥 울컥

토해내는 후포바다는

여전히 여름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소나무 숲과

길을 잃은 검은 개 한 마리와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갈매기와

노을을 잊은 후포바다는

등기산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 너머

고기를 잡으러 간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아버지는

대게 몇 마리 가슴에 품고

오실는지

녹등, 홍등 등대는

걱정스레 반짝거리고

 

집을 너무 멀리 떠나온

사람들은

9, 후포바다에서

먼저 온 가을과 함께

나와,

나를 떠나간 사람과

보랏빛 여름 햇살을

그리고 있다

 

 

 

학암포 연가

 

8월이 오거든,

사랑하는 이여

백일홍

곱게 핀

학암포로 오시오

 

내 마음

도드라져

저렇게 붉게

꽃으로 피었나니

 

내 어찌

백일(百日)만 그대를

생각하리오

 

눈물처럼

뚝뚝

백일홍 지기 전에

두 눈 꼬옥 감고

꽃잎 숨결 만져보오

 

그 보드라움

내 마음 같아

학처럼 날아와

살포시 고백하리오

 

8월이 오거든,

아직도

못다 한 사연이 있거든,

사랑하는 이여

학암포로 잊지 말고

오시오

 

충남 태안군 원북면 방갈리에 있는 해수욕장

 

 

그대에게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커지는 산을 본다

 

새벽

푸른 안개에 갇혀

차마 사랑한다 말도

제대로 못한 갑갑함을

풀어 놓는다

 

산을 지키는 것은

크고 잘 생긴 나무가 아니란 것을

그대는 아는가

 

튼실한 나무는

일찍 잘리어 어느 집 서까래로

잊혀져가고

 

산을 푸르게 지키는 것은

휘어지고 못생긴 나무란 것을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늘 부족함으로 가슴 아파하는

작은 그대란 것을

 

 

 

미꾸라지

 

소금을 뿌리면

허옇게 거품을 내며

이젠 죽었다 발버둥치는

그네들의 모습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박촌 어디메쯤

양동이 하나 가득

미꾸라지를 잡아 오셨다

 

깻잎에

수제비를 뜯어넣고

슬픔처럼

추어탕을 드셨다

 

비가 오는 날이면

슬레트 지붕 아래

총총히 박히는 빗물처럼

여름을 나셨다

 

하늘로 올라간 미꾸라지처럼

아버지는 빗줄기 타고

언제쯤 내려오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