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이둘임시인'


이둘임시인의 詩 회전하는 하늘 외 4편

이둘임시인의 약력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황토현 시문학상, 신정문학상, 솜다리문학상, 석정 이정직 문학상 수상
2022 시사불교매너리즘신춘문예 시부문 우수상 당선
시집 "광화문 아리아" 외 동인지 다수 공저

 

 

 

회전하는 하늘 

우우-
하늘이 운다
구름이 잔뜩 웅크린 하늘
새 한 마리 동정을 살피듯 낮게 난다

장마가 잠시 멈추었을 때
숨을 깊숙이 파묻고
북쪽으로 향하다 잠시 멈춘 듯
종일토록 후덥지근하게 매달렸던 하루
턴테이블 위만 돌고 도는 엘피판처럼
밀어내고 밀어져야
차례가 주어지는 회전판 위 네 개의 방
지체할 공간없이 발걸음들 모였다 흩어진다

밀려나는 시간과 밀려오는 시간을
회전하지 않고
돌아 나오지 않는 계절마다
이정표 없는 길이 한없이 이어져 있다
한 계절 털어버리고
바쁜 여름으로 어서 가자 손짓한다

 

 

 

창문은 소통할까요 


우리 손 흔들어 볼까요
계절은 초록이고요, 아침은 블라인드예요

아파트 건너 빌딩
층층이 커튼이 닫힌 창문은 소통될까요

샤를 보들레르*가 열린 창은 닫힌 창보다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했어요

마음의 창을 꼭꼭 잠그고 있던 아들
깊은 우물 속같이 팔수록 더 알 수 없었어요

내가 투명해지기로 했어요
벽을 허물고 싶었거든요

바람이 창문을 두드릴 때마다
가슴을 졸이던 직장인 엄마의 밤
늘 암실 커튼 속에 숨어 마음은 까맣게 태웠지만
커가며 서서히 소통문이 열렸어요

이상하게 나의 시야는 흐릿해져 갔어요
오늘도 애꿎은 안경 렌즈를 닦고 있네요


* 프랑스 비평가, 시인

 

 

 

위층의 표현 방식 


 본성이 좀체 변하지 않는 아파트에 살면 귀 닿는 부처가 있다 늦은 밤 위층 꼬마 잠 뿌리치고 뜀박질하는지 멀쩡한 천장 위 제트기가 지나간다 넋두리 염불 읊고 참선에 드는데 다시 쿵쿵거리는 어른 발망치 소리 눈앞에 별이 반짝인다 퇴근해서 왔나 보다 종일 바깥에서 긴장하다가 늘어진 꽃대를 세우는 중이겠지 자비로운 경지로 염불 수행한다 가까워도 뛰어오를 수 없는 위층에서 불당으로 보내는 죽비 소리, 발끈하는 순간 우주의 미아가 될까 여간해서 화내지 않는 1004호 어르신, 콘크리트 박스 속에서 등신불을 꿈꾸는지 한량없는 숨결이 가늘게 떨린다

 

 

 

풍경風磬 

빽빽한 빌딩 위 우뚝한 대형 광고판
간결한 문장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떤 날은 새뜻한 문구가
따스한 바람으로 와닿고
오늘은 코가 찡해지더니
찌든 마음을 망치로 펴는 문구다

 

마음을 잡아주는 글귀
청아한 풍경소리로 귓전을 맴돈다

한 계절이 지나가고 새로운 글 판이 올라온다
리허설 없는 삶을 뒤돌아보라며
계절마다 나를 깨우쳐 준다

영혼을 씻어주는 문장

거리의 풍경風景이 풍경風磬이 되어
나의 일상을 인도하고 있다

 

 

 

 

여의如意* 시대 


가난한 나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은 날이 많아 우린 빨리빨리를 외치며
밭은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부족하여 어려워도 있는 그대로 만족하며
등 긁을 손이 없으면 불퉁한 벽을 찾다가
어머니는 때때로 내 고사리손을 빌렸다

가려움을 긁어 주는 여의
수학여행 때 사 온 효자손이 대신했는데
신 여의봉과 여의주가 곁에 있다
시키는 대로 척척 해내는 인공지능 AI

여의봉이 된 엄지 검지
, , 선 따라서
식사를 주문하는데
시계 침이 거꾸로 간다는 알바생
까맣게 속이 탄다

AI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감정선 따라오던 문장이 여의할까?
여의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 마음먹은 대로 되다
** 동요 도깨비나라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