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권위상 시인’

권위상 시인의 詩 청춘들 외 4편

 

권위상 시인의 약력

 

부산출생

2012시에로 작품활동 시작

민족문제연구소 산하 민족문학회 사무국장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 위원장

부산작가회 회원

시집 마스카라 지운 초승달

 

 

청춘들
 
 청춘들, 사이버 망명이라 했지만 쫓겨난 것에 불과하다 아무도 땟거리를 챙겨주지 않아 말라가는 청춘들 짧은 이력은 한겨울 낙엽 애타게 폰을 기다리지만 벨은 침묵 모드 채용 공고를 뒤져 구겨진 지원서를 던져본다
 불은 면발 같은 몰골들
 
 청춘들, 파업장에 끼어 앉아 구호를 외친다 살려달라고 문 닫지 말라고 한 푼이라도 더 달라고 공정하자고 월세 내게 해달라고 꿈을 짓밟지 말라고 희망의 끈을 자르지 말라고
 차가운 맨바닥 엉덩이가 시리다
 
 청춘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지만 우리는 딱 여기까지다 얼굴만 바라보다 입술에서 얼어 고드름이 된 사랑한다는 말 딱 여기까지다
 의무도 없고 책임도 없는 사랑이 길바닥에 나앉았다
 
 
사라진 봄
 
서부간선도로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서해안고속도로라 한다
서부간선과 서해안고속 그 경계는 어디일까
이어져 연결된 도로인데
표지판에 분명히 씌어 있을 텐데
못 보았는가 보다
 
한 해가 지나고 다음 해가 온다는 날
해가 뜨는 것도 똑같고 어제와 바뀐 것도 하나 없는데
새해가 왔단다 아무 변한 것 없이
아무 한 것도 없이
 
봄이 그렇다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
벚꽃 잎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몇 번 졸더니
봄은 벌써 가고 없다
누구는 봄은 없다고 단언한다
 
현기증은 귀에 봄이 와서 그렇단다
조금만 기다려보란다
병원을 나오자
봄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있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가슴이 박수와 꽃다발을 받고
사람들이 가슴을 품고 껴안을 때
등은 마냥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가슴을 활짝 펼 때 등은 움츠러들고
가슴 창문을 활짝 열 때 등은 얼른 커튼을 드리운다
심장이 뛰는지 가슴에 귀를 대면
등에서도 들려오는 숨 쉬는 소리
낮은 등짝은 그저 가슴 뒤에 붙어 생을 함께한다
날마다 심장을 받치고 가슴을 지지해 눕는 등
잘못한 것도 없이 철썩
등짝은 손바닥으로 기습당하고
떼밀리기도 하고
더러는 짓밟히기도 하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 번도 가슴과 대면하지 못한 등은
그저 가슴을 밀어주고 받쳐주지만
가끔 토닥토닥 격려를 받는 게 전부다
우리도 등짝 같은 삶을 살아봤을까
아버지의 앙상한 등짝을 밀면서
늙은 근육 사이로 십일자 지게끈 자국
굳은살을 문지르며
등짝처럼 살아야겠다
그림자로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고래를 돌려
거울 속 들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아내가 자궁을 통째로 들어냈을 때
의사가 그랬다 옆에서 잘 돌봐주라고
우울증이 오면 더 힘들게 된다고 거듭 주지시켰다
나는 바빳다
별일 없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별일은 없었다
 
나는 하복부에 이상이 생겨 주변 부속물 포함
뿌리째 들어낸 후 의사라 그랬다
우울하면 즉시 정신과를 찾아가라 연락처를 주었다
별일 없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별일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마음이 울적하기 시작했다
우울해야 할 아내는 내 눈치를 보며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가져다주고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를 들려줬지만
공허할 뿐이었다
 
어는 날 밤 아내가 그랬다
한강에 같이 나가자고
이 야심한 밤에 왜 한강을 가자는지 묻지 않고
따라나섰다 겁이 덜컥 났다
 
강물이 야경을 보듬고 흘러갔다
벤취에 앉아 아내가 그랬다
그게 무엇이든 세상에 하나쯤 없이 사는 것도
괜찭지 않냐고 물어왔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게 대수냐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총총한 별이 흐려 보였다
여우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아내가 나를 꼭 껴안아주었다
 
 
벽보를 붙이며
 
벽보를 붙이며
이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실낱같은 희망이 꿈틀거렸다
너는 나갔지만
나는 너를 보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너를 찾아야 할 의무가 있고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너는
시지푸스의 바위
그림자에 놀라 펄쩍 뛰던
너는 굴뚝의 연기일 뿐이다 그래도
돌아오너라
나를 용서해다오
 
한 무리의 노인들이 전신주에 물을 뿌리고
벽보를 뜯어내지만 나는 또 붙일 것이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너의 신상과 특징 그리고 목소리를 복구할 때까지
너를 인간으로
환생시킬 준비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