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진란시인’


진란시인의 詩 골목 외 4편

진란시인의 약력

 

1959년 전북 전주 출생

2002년 계간주변인과 로 작품 활동

현재 계간문학과 사람편집위원, 계간p.s.부 주간

시집 혼자 노는 숲』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외 공저 다수

 

 

 

골목

 

 

눈 깊어진 당신이

귀 얇아진 당신이

 

지난 시간의 흔적을 밟아온 휘파람 소리는

은회색의 저녁, 긴 꼬리를 끌어당긴다

사람꽃 져버린 자리,

온기없는 골목이 슬그머니 미끄러진다

 

서쪽으로 밀린 구름들도 작당했는지

물끄러미, 서슬이 붉다

 

나 없이도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이다

 

 

 

 

 

미운 사람 없기, 지나치게 그리운 것도 없기, 너무 오래 서운해 하지 말기, 내 잣대로 타인을 재지 말기, 흑백논리로 선을 그어놓지 말기, 게으름 피지 말고 걷기, 사람에 대하여 넘치지 말기, 내 것이 아닌 걸 바라지 말기, 얼굴에 감정색깔 올려놓지 말기, 미움의 가시랭이 뽑아서 부숴버리기, 그냥 예뻐하고 좋아해 주고 사랑하기, 한없이 착하고 순해지기

 

바람과 햇볕이 좋은 날 자주 걸을 것

마른 꽃에 슬어 논 햇살의 냄새를 맡을 것

그립다고 혼자 돌아서 울지는 말 것

삽상한 바람 일렁일 때 누군가에게 풍경 하나 보내줄 것

잘 있다고 카톡 몇 줄 보낼 것

늦은 비에 홀로 젖지 말 것

적막의 깃을 세우고 오래 걸을 것

 

 

 

 

가을, 누가 지나갔다

 

 

숲을 열고 들어간다

숲을 밀고 걸어간다

숲을 흔들며 서있는 바람

숲의 가슴에는 온전히 숨이다

숲을 가득 들이쉬니 나뭇잎의 숨이 향긋하다

익숙한 냄새, 킁킁거리며 한참 누구였을까 생각하였다

그대 품에서 나던 나뭇잎 냄새가 금세도

이 숲에 스며들었었구나

개똥지빠귀 한 마리 찌이익 울며

숲 위로 하늘을 물고 날아갔다

어떤 손이 저리도 뜨겁게 흔드는지

숲이 메어 출렁, 목울대를 밀고 들어섰다

거미줄을 가르며, 누군가 지나갔다

붉은 것들이 함성을 지르며 화르륵 번졌다

숲을 밀고 누군가, 누가 지나갔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구름도, 바람도, 햇살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꽃도, 나무도, 별도 달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미움도, 원망도, 회한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사랑도, 미련도, 눈물도 아니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첫봄처럼 개나리봇짐을 메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타오르는 꽃불을 들고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사람을 사랑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문을 통하여

손에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네, 사람 사는 세상이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어록 중에서

 

 

 

 

바깥에서는 울음도 눈이 부셔요

 

 

함께 머물던 달의 뒤편이라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했어요

그 밤은 질척거리는 달도 손을 놓아 버렸어요

만항재 산길에서 만났던 안개처럼

가늠할 수 없는 혼돈의 농단여요

당신이 뒷심으로 끌고 온 그 꽃 분홍

퍼즐을 거의 완성한 줄 알았죠

 

쥐가 고양이를 물었어요

 

다시는 멀리 갈 수 없는 먼 동,

동이 튼 후에는 그 꽃의 배후마다

알 수 없는 향기만 꼬물거려요

친절한 악수 씨, 이제 볼 수 없지만

꽃 댕강 꽃 지듯 약속도 한 세상 떨어지고요

꽃의 흰 그림자만 오래 남아요

 

이유 없는 죽음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