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김경식시인’


김경식시인의 詩 새봄 외 4편

김경식시인 약력

 

충북 보은 출생.

보은문학회. 달숨, 풍향계 동인

다시올문학신인상.

시집 적막한 말,

명상에세이집 동행

 

 

새봄

 

물 좀 들이지 그러냐.

 

반백半白의 아들을 건너다보는

구순九旬의 눈빛이 애잔합니다

어머니 먼저 하셔야지요.

늙은 할미를 누가 본다고.

새색시처럼 고울 텐데요.

그럼 가서 금이나 보고 올까?

못 이기는 척 짚고 나선

지팡이의 얼굴은 벌써

진달래 물이 들었습니다

 

골목이 문득 환해졌습니다

 

 

만행萬行.2

 

큰스님 설법說法보다

백팔 배 삼천 배 공염불空念佛보다

 

처마 끝 풍경이나 올려 보다가

바람의 행방을 쫓고 있다가

 

흐르는 구름 따라

길을 나서자

 

산도 절도

머무는 곳이 아니지

 

이미 오래전 속세로 떠난

전생의 부처들

 

불현듯이 옛날 생각이 나서

어쩌다 한 번씩 다녀가는 곳

 

먼지 앉은 대웅전 부처님보다

미륵불 긴 그림자 어깨에 메고

 

팔만사천 번뇌의 끝을 찾아서

바람 따라 다시 길을 나서자

 

 

보살행菩薩行

 

행여 길을 잃을까.

구순九旬의 지팡이를 따라나서네

두세 걸음 떼어 놓고 쉬어서 가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숨찬 길이네

 

첫걸음 아이 손을 잡고 나섰던

스물다섯 꽃피는 고샅을 지나

군데군데 무너진 돌담길 따라

정든 이들 먼저 떠난 동구 앞까지

 

여생餘生의 멀고 먼 도피안到彼岸의 길

언제나 다다를까 알지 못하네

처지지나 않는지 멈출 적마다

근심스런 얼굴로 돌아보면서

 

돌부리 진창길 모두 피해서

불여튼튼 찬찬히 살펴보라고

이순耳順의 어린 자식 못 미더워서

아흔 살 어머니 앞서가시네

 

 

적막한 말

 

다음에 보자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문득 눈앞이 캄캄해진다

 

동백에서 산국山菊까지 빠르게 한 순번 돌고 나면

이내 눈발이 치고

세상의 길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을

 

내주 혹은 내달 언제

따로 날을 정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이었을 터

 

다음에, 그 말씀은

이승의 시간 다 흐른 뒤에

열명길 함께 나서자는 서러운 약속이겠거니

 

이러한 때

사전 속의 유의어 사후事後

사후死後로 읽어야 하는 법이다

 

 

농다리

 

헤엄칠 생각을 왜 안 했겠는가

 

세찬 물살 온몸으로 거머당기면

은하처럼 아득해도 저 언덕

한겻에 닿을 것을

 

강변의

넓적

이리 괴

고 저리 받

쳐서 겨

우 한

발짝

씩 나는 나

아가느니

 

그대가 흘리시는 안타까운 물소리 왜 모르겠는가

 

앞서 떠난 이들의 가쁜 숨결에

굽이치는 물결을 휘감아 들고

 

이생 아니면 다음 어느 생이라도

마침내 그대에게 이르리니

 

그대의 발밑에도 풀쑥

징검돌 하나

솟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