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봉주시인의 詩 들꽃에 화엄의 길 외 4편
임봉주시인 약력
1998년 시집 <지상에서 꿈꾸는 천상> 발표
2005년 계간 <자유문학> 신인상
시집 <들꽃에 화엄의 길>외 5권
인천문인협회 회원
들꽃에 화엄의 길
꽃마리 속에 길이 있네
달맞이꽃 속에 길이 있네
개망초꽃 속에 길이 있네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득히 먼 은하로부터 전해온 길
태초에 엽록소 식물 탄생 시기부터
초록 비밀 머금고 면면히 내려온 길
인류 출현 시기 이전부터 내공 쌓아온 길
작은 들꽃 속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태양이 반원 그리며 지나가네
꽃 속에 하얀 낮달이 눈짓하네
밤이면 들꽃에 은하수 별 반짝이네
들판 돌멩이 하나에도 수억 년 겪어온
이 지구 행성의 역사가 깃들어 있네
들판의 흙 속에 수억 년 켜켜이 쌓인 흙의
속 깊은 내력이 들어 있네
그 돌 틈과 땅의 비밀스러운 내면에
들꽃이 뿌리 내리고
대자연의 맥박 이어받아 꽃 피우네
들꽃의 유전하는 기억 속에는
천지를 집어삼킬 듯 폭발한 화산과
천지를 쓸어버릴 듯 폭풍우와
세상을 꽁꽁 얼려버릴 듯 혹한의 계절도 있네
들꽃은 언제나 침묵하는 성자(聖者)처럼 말이 없네
아픔과 슬픔과 번뇌를 안으로 다스리고 삭여서
환하게 미소 짓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마구 흔들리면서도
바람을 탓하지 않네
단 한 번의 꽃을 피우기 위해
일 년 삼백육십오 일 한마음으로 기도하네
들꽃은 세상이 쓰다 달다 평하지 않네
부처가 들어 올린 꽃을 보고 가섭(迦葉)이
미소로 화답하듯
들꽃은 보는 사람에게 말 없는 말 전하네
들꽃 속에 아득히 난 길이 있네
화엄의 집으로 가는 길
무심코
보도블록 틈새에 민들레가
보도블록 틈새에 땅빈대가
보도블록 틈새에 개미자리가
그냥 무심코 오가던 출퇴근 길
관심을 기울이고 보니
보인다
담벼락 밑에 제비꽃이
담벼락 밑에 꽃마리가
담벼락 밑에 닭의장풀이
무심코 다니는 길
길가에 개망초가 피었다
길가에 뽀리뱅이가 피었다
길가에 큰봄까치꽃이 피었다
무심코 다니던 길에서 마음 열고 보니
풀꽃 보인다. 작은 생명이 손짓한다
바람개비 은하
큰곰자리 방향으로 2,100만 광년 떨어진 곳
아득한 우주에 있는 아름다운 바람개비 은하
지구 닮은 그곳 행성에 가면
초원에서 사자와 임팔라가 장난치며 논다
그곳 마라강에서 악어가 물에 빠진 누 떼를 구해 준다
지구별에서 사라진 공룡 티라노사우루스가 있고
지구별에서 사라진 불로장생의 꽃도 피어 있다
그 별에서는 호랑이와 토끼가 친구이고
그 별에서는 보아뱀과 어린이가 친구다
사시사철 꽃이 피는 나라
어느 사람도 다른 사람을 지배하지 않으며
병든 자, 굶주린 자, 고독한 자가 없으며
지위가 없으니 지위를 두고 다툴 일 없다
서로가 배려하고 따뜻함이 있는 나라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
고요한 명상과 잔잔한 선율이 흐르는 나라
그런 나라에 가 보신 적 있습니까?
먼 은하에는 꼭 있을 겁니다
우리가 꿈꾸던 나라
비탈에 선 꽃에게
6월이면 들꽃 피어나
금계국, 패랭이, 기생초, 수레국화
잡초 우거진 틈새로 고개 내밀고
하늬바람에 소소히 흔들린다
펀펀한 들판도 아닌
안온한 숲 속도 아닌
하늘도시 변두리 산자락 싹둑 잘린 비탈진 곳
위태롭고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이 피어
생명의 경이로움 노래하고 있다
마음 허전한 날이면
아무도 모르게 너희를 찾아가
마음 달래보고
너희에게도 응원 보내는 걸 알까
바람결에 흔들리는 꽃을 보고 있노라면
왜 그런지.
아득히 먼 하늘로부터 교감해 와
내 눈가에 촉촉이 젖어드는 이슬방울
황금 연못
황금 연못에는 황금의 꽃들이 피지
황금 연못에는 황금의 물고기가 살지
하지만 아무도 가 보지 못한
높은 산봉우리 안개에 가린 연못이지
황금 연못의 전설은 자자손손 전해 오는
꿈같은 이야기지
황금 연못으로 들어가 길 잃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인형이 되어 굳어버리지
황금 연못의 비밀은 아무도 풀지 못하고
일곱 빛깔 열쇠를 가진 자만이
열 수 있지
하얀 손을 가진 자만 그 열쇠를 받을 수 있지
사람들은 누구나 황금 연못의 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지.
언젠가 황금 연못으로 들어가
눈부신 꽃들을 꺾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들어가 되돌아온 자 없는 그 연못에는
지금도 황금의 사과가 열리지
오늘도 금빛 사슴이 뛰어다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