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명서영시인'


명서영시인의 詩 시계 외 4편

명서영 약력

2005 년 심상 시등단

2005 년 한국문인협회 청소년 시문학상 수상

2009 5.18 문학상 수상  [시계 , 외 총 5 작품 ]

시집 [오르가슴 ] [부서지는 집 ] [시계 ]

2018 년 시 감상 작품집 [시 맛있게 읽기 ]

2009 년 문학 석사 논문

전 국립 청양대학교 교양국어 강사

 

 

시계    

 

거실 정면에서 바늘이 앞뒤로 오락가락

고장 난 저것은

중심을 찾는 것이 분명하다

오르지 한 방향으로만 치닫던 

생각들을 수선하고 있다

덜컹덜컹 달려온 길이 

삶의 궤적으로 서있는 숫자 앞에 

잠시 자신을 내려놓는 녹슨 바늘 

새털보다 가벼웠던 세월을 추억하며

비로소 활짝 편 손은 편안하다 

하늘을 꿈꾸던 나뭇잎이 바람에 날아가듯

몸은 뜨거웠으나 헛바퀴를 돌던 사랑이나 

쉬지 않고 달렸으나 제자리 일 때나 

돌아보면 푸르기만 한 휘돌린 길

발병 나고서야 제자리에서 맴돌았던 

시계 視界 가 살짝 열린다 


 

 

외각지대-이끼                          

 

이끼가 그늘을 좋아한다고 가볍게 말하지 마라
어둠이 두렵다 , 그는
출구 찾다가 온통 그늘을 뒤덮었다

얼마나 발버둥 쳤으면
햇볕을 받지 않고도 푸른 피가 돌고
잎과 줄기의 구별을 명확히 할 겨를도 없었겠는가 ?

어떤 것은 일 센티 크는데 백년이 걸린단다
무겁고 허기진 잎

그의 작은 키는 그늘의 슬픔이다 , 평생
음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도 있다

 

                          

 

소래포구 스케치 

 

짭조름한 아침
 “어물전 망신 꼴뚜기유 제 맴은 덤 이유
 비린내를 가득 물은 소래산이 밀물진 바닷가
 포구 앞 굴비처럼 늘어선 인파 속
 팔딱팔딱 뛰는 상인들
 앞에는 수북이 쌓인 꼴뚜기가 날개 돋친 듯
 사람들의 시장바구니 속으로 옮겨 타고 있다
 “첨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은 사람은 없음용
 꽃게발가락처럼 크게 벌린 상인
 손가락이 꼼짝없이 지폐에 물려 쓰러진다
 근심과 한숨은 다들 집에 놓고 온 듯
 이곳에서는 식민지가 된 웃음
 활짝 편 얼굴과 싱싱한 소리를 한 아름씩 담아가는 사람들
 뒤로 지느러미를 포구에 담근 소래산이
 구름을 걷어 올려 아가미를 내밀고 있다

 
 

소나무 분재  

 

나뭇가지마다 전깃줄에 칭칭 감겨있는 어린 소나무를 사왔다

탯줄에 목이 감겨 나온 갓난아기처럼 나무

옹알옹알 참새소리가 아득하다

산고기만 먹는다는 돌고래가 수족관에선 죽은 고기를 먹듯

배냇저고리부터 길들여지고 있는 소나무

오라인 전깃줄을 자르자 꿈틀꿈틀

누군가를 가두려다가 갇히고만 전깃줄이 먼저 도망을 간다

원칙과 반칙은 늘 한 선상에 선 적과 친구

참새 울창했던 산모퉁이 목 빳빳이 세우던 솔 아비와

참새 등에서 졸다 미끄러져 뿌리가 한 뼘씩 자라던 전깃줄은

옆집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늙은 전깃줄을 바라보고 있는 배고픈 아기 나무

참새들이 하늘에 적어 놓았다는 아비의 빚 상속은

천문학적 증여세는 기억도 없다

거실에 가득 잘린 전깃줄과 솔잎잔해들 ,

한순간 헝클어지고 끊어진 관계들이 널브러져 있다

뾰족뾰족 한 잎씩 길들여진 편향된 나의 생각들이 더 울창해지도록

물 한 바가지 아기나무와 나눠먹는다

 

                             

 

인삼벤자민*    

 

결혼기념일에 사온 인삼벤자민

화려하고 묵직한 도자기화분 인물에 반해

이십년 만에 분갈이를 한다

커다란 화분에 작은 나무 (몇 십 년은 거뜬 할거야 )

거뜬하도록 화분 안은 온통 스티로폼 뿐

덩그렇게 말라비틀어진 햇살

하얗게 퇴화된 한줌의 흙

흙에 꽉 잡힌 뿌리 몇 개가 까치발로 서있다

(이 집 귀신으로 뿌리 내릴 것이야 나무

아직도 깨지 않은 잠에 흔들리고 있다

인삼과 벤자민이 하나

한 집에 짓이겨진다는 하얀 꿈

그러고 보면 나무 처음 이 집에 올 때부터 배배 꼬여 뒤틀려 있던

나무줄기 , 여기저기 잘린 나뭇가지들

나무눈 **을 잃은 나무 눈에 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더듬더듬 똥구멍까지 힘주어 잔뿌리 몇 개 내고   

갈팡질팡 길 튼 흔적들 이쪽저쪽으로 싹을 틔웠다

(누가 알까 ? 밤마다 흠뻑 사레들리다 나체로 깬다는 걸

강산이 두 번 실컷 물 먹었다는 걸 )

나무 평생 헛물 켰던 대궐 도자기 집에서 쫓겨나

플라스틱 화분으로 다리를 쭉 뻗는다

사리가 된 바싹 마른 잎들 우수수 추풍낙엽으로 굴러 떨어진다

(송충이는 솔잎 )

목마른 하늘에 인삼향기가 쓰디쓰 다

 

*식물과로 인삼과 벤자민 나무를 합한 화초  

**봄철에 나뭇가지에 싹이 트는 보풀보풀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