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곽성숙시인’


곽성숙 시인의 詩 꽃쌈 외 4편

곽성숙시인의 약력

1964년 광주출생

전남대학교 중문학과졸업

2014년 시 애지로 등단

1회 무등산 공모시 대상 수상

35.18 정신계승글짓기대회 금상 수상

시수필집 차꽃,바람나다(2011)차꽃, 바람에 머물다(2013)

시집 날마다 결혼하는 여자(2016)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2022)

 

꽃쌈

 

꽃잎이 꽃술을 감싸고 있을 때

새들이 통째로 따먹는 모습을 나는

꽃쌈이라 부른다

 

참새가 그럴 줄 몰랐어

나는 네가 그리 고운 속을 가진 줄 몰랐어

오십이 넘고서야

새가 꽃을 따먹는 것을 알다니

제 작은 몸속을 꽃 천지로 채우려고

쌈 싸먹듯 앵두꽃을 톡톡 따 먹는다는 걸 알다니

 

새야,

꽃쌈으로 너는 배를 불리고

꽃보쌈으로 너는 아이를 낳았구나

포르르 포르르

참새 떼들이

앵두 꽃가지를 흔든다

 

달빛 환한 봄밤에

꽃쌈 먹는 참새야,

욕심껏 모은 꽃 향을

부디 내 방 가득 부려 주어라.

 

 

 

화사석에 꽃이 피어-개선사지 석등*

 

탑돌이 하고 잘래

 

건너편 마을에서 참깨밭을 건너 온 그녀가

화창火窓을 살짝 쓰다듬다 달을 올려 보았어요

그 말을 알아들은 화사석 여덟 창에

꽃이 화르르 피어났지요

어둠의 손을 잡고 걸어보자고

시방세계에서 온 귀꽃이 화사석에 마음을 얹었답니다

 

당신에게 갈게요

 

토닥토닥 꽃그늘로든

사각사각 비로든

일렁얄량 바람으로든

어둑어둑 그림자로든

보무라지 같은 꽃잎 날리며

하드르르 당신에게 내가 갈게요

 

거기 그대로 계세요

 

참깨 밭에서 놀다 화창火窓으로 들어간 해가

그녀의 반짝이는 눈물을 보았어요

탑을 도는 그녀의

들썩이는 어깨로 꽃잎이 눈부시군요

 

어두워야만 곁에 오는 것들이 있답니다

그때서야 허락되는 먼발치 말이에요

 

*담양군 남면 학선리에 있는 통일신라 석등.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

 

선암사 해우소의 맞배지붕

박공널*의 시옷이 되어

어느 시인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어

 

화송의 등 굽은 허리에 기대던 그가

어깨를 들썩이다 무릎을 꿇고 곧

소리를 내었지

삶이 통곡을 하는 것은

해우소에 앉는 것과 같아 가벼워지는 것이니

난 묵묵히 내려다보는 것으로 그를 위로했지

 

시옷이란,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대는 것이기에

그의 어깨를 안고 따라 울면 되지

소리 없이 손길만 주면 되지

가만히 등만 내어줘도 되지

옆에 말없이 서 있어만 줘도

통곡은 빛이 나고 할 일을 다하는 것

 

박공널의 시옷이 되는 것은

내게 기대도록 너에게 곁을 주는 일이야.

 

*박공지붕 양쪽 끝 면메 자 모양으로 붙인 널판지

 

 

 

 

분꽃 마을

 

화순 이서 가는 길 폐교 앞마을은

대문간마다

저녁밥 재촉하는 분꽃이 피어 있다

 

골목마다

졸고 있는 개와

나른한 고양이가 있다

 

화순 이서 가는 길

폐교 앞마읖엔

엄마 목소리 들리는 분꽃이 있다

 

일평생 대문 앞에 피어 있던 분꽃이었다

종종종 저녁밥 지어내던 분꽃이었다

흰 머릿수건 쓰고 사신 분꽃이었다

 

엄마는 단발머리 여자아이

나 하나만 바라보던 분꽃이었다.

 

 

 

소금쟁이가 튀는 이유

 

소금쟁이가 그렇게 물 위를 살금

튀어 옮기는 것은

제 몸이 녹을까 싶어서야 소금쟁이잖아

물에 사르르사르르 녹아버리는 소금이잖아

소금을 지니고 태어났으니

제 몸을 살짝

아주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며

이 생을 버티는 거야

네 다리를 쫘악 벌리고 뛸 때마다

물의 짠맛은 짙어가지만

발바닥은 얇아지지만

쉬지 않고 튀어보는 거지

 

나는 소금쟁이니까

가만히 있다 녹아버릴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