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서혜경시인'

서혜경시인의 詩 야생의 강 외 4편

서혜경시인의 약력

 

서울출생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2013년 허난설헌 문학상 수상

2009<국제문협>으로 등단

시집 야생의 강

 

 

야생의 강

 

안개에 갇혀서

절벽 옆을 흐르는 강은

자연의 고요에 머물고 싶었다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가

숲 사이로 흐르는 강은

침묵을 배우고 싶었다

 

누가 강의 길을 막았을까

자유로운 노래를 싣고

강은 달리고 싶었다

 

야생의 고요

야생의 시간

야생의 노래로 인해

길들여지지 않은 강은

바다에 도달한 뒤

먼 하늘을 날고 싶었다

 

내가 꿈꾸는 야생의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지상의 양식

 

환한 가을 햇살 사이로

국밥 한 그릇 받아가며

길 위에서 허기를 달래는 사람들

등 뒤에 맨 배낭들 속엔 어떤 기억이 들어 있을까

길 떠나 온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모습

국밥을 들이 키는 얼굴이 숙연하다

그들의 신성한 식사 시간에

눈길 마주치지 말아야지

 

구구구구...

비둘기들이

광장에서 모이를 주워 먹고 있다

국밥 냄새가 창백하게 나무 잎새에 스며든다

 

따뜻한 지상의 양식들

부초처럼 떠돈다.

*앙드레지드 '지상의 양식'

 

 

꽃으로 핀 신발들

 

모양이 다른 신발을 모아

활짝 핀 꽃으로 만든

 

누가 걸어온 길인지

혹 그 길 위에서

주저 앉은 적은 없었는지

신발들의 사연들이

꽃으로 피었다

 

어느 무도회에서

춤을 추던 신발일가

어떤 섬에서

조약돌을 밟다 벗어 놓았던 신발일가

단풍 잎 떨어지면 붉게 물들던 신발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꿈길을 걷던 신발

개미를 밟았던 신발일지도 몰라

 

얼룩진 신발들은 나비를 모으고

주소가 달랐던 신발들이

코를 마주하고

둥근 꽃으로 피어났다

 

 

모래시계

 

한 여자가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황토 방 안에 있던 눈들이

일제히 모래시계를 바라본다

 

모래시계에

구겨 놓은 삶이 기지개를 편다

오랜 세월 시린 무릎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뜨거운 열기도 극기로 변하는 방

모래 사막을 건너는 낙타와 닮아 있다

 

실크로드가 펼쳐지고

태양의 열기에 무릎을 꿇는 낙타들

휑한 눈들에 변방의 채찍이 가해지고

대상隊商의 음악이

낙타의 가쁜 숨을 재촉한다

또 다시 모래시계는 침묵 속

길을 간다

 

갈증 난 여인들은

쑥차의 향기에 젖어 들고

모래시계 앞에서 경건하다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는 여인은

눈을 감으며

사막을 걷는다

 

 

한 시람이 스며드네

 

숲에 들어가

노란 양지 꽃 반가워

언덕에 엎드렸네

 

흙은 따뜻하고

나비들 날아 다니고

가슴을 대고 양지 꽃과 눈맞춘 곳

누군가의 무덤이었네

이름모를 사람의 생이

내 가슴으로 스며 들었네

 

어느 사랑하는 사람 남겨두고

떠난 이의 이별이

내 가슴으로 스며 들었네

얼굴 모르지만 그 사람

한 사람이 스며 들었네

 

바람 불고 햇살 부드러운 날

흙은 한 사람의 생을 덮고

숲은 알맞게 빛나고

 

양지꽃 한송이

사람의 일생을 다 안다는 듯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