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임승훈시인’


임승훈시인의 詩 어떤 미소 외 4편

임승훈시인의 약력

 

충남 부여 출생

2019시인정신등단

시집 , 지켜야 할 일

 

 

어떤 미소

 

천 리를 내다보는 보살이

바위를 등지고 있다

사라진 백제의 신기루로 남아

지나온 세월을 머리에 얹고

햇살을 머금고 서 있는 삼존불

 

동녘에서 이슬 털고 나오는 햇살에

들릴 듯 말 듯 따스하게

경전을 읽어 내려간다

지친 심신마저 미소로 담고

세상으로 걸어 나온다

 

집으로 향하는 원융의 하루

경전을 다 읽었는지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동자의 얼굴

눈부신 햇살에 보살의 미소가

시간 따라 수시로 변해 간다

 

눈으로 말하는 천년

벙어리로 말하는 천년

천둥 번개 비바람 눈보라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

정과 망치로 돌을 두드린 이 누구였을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달팽이관을 맴도는 마애삼존불

 

 

채석강의 노래

 

중생대를 지나 고생대를 돌아 나오는 길

용암 자국을 따라 공룡이 밟고 지나간 자리

박박 구겨진 골판지마다

다듬지 않은 주름 무늬가 겹겹이 쌓여있고

천만년을 휩쓸고 간 세월의 발자국이

녹슨 바위에 새겨져 있다

녹슨 칼로 시루떡을 자르다 만 흔적

잘려나간 바위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고서들

파도가 새겨놓은 주름진 억겁의 어록들이

나를 잡아끈다

조류 따라 해식동굴 안에 들어와

적벽가를 부르는 석양

가시수평선 끝에서 희로애락을 부둥켜안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물 때 따라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에

길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채석강

노을도 천만년을 끌어안고 나를 부르고 있다

 

 

촉로

 

멀고도 험난한 길

사나운 물살과 물바람 물소리 물 냄새가

수로의 이정표가 되어

이만 킬로의 물길을 헤치며 간다

 

무리 지어 폭포를 오르는 수많은 중생들

날개를 펴고 폭포를 날아오른다

떨어지는 폭포

생과 사를 가르는 염불소리 같이 들려온다

 

처음이자 마지막 길

귀환의 설렘 속에 어미의 고향 이자

내 고향에 왔다

상처 난 비늘에 어미의 지문이 보이고

통통한 근육 사이에

지나온 세월의 무늬가 나이테처럼 줄 그어져 있었다

 

하나둘 세상을 나오는 생명들

어미의 모성애가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동그란 알을 바라보는 어미의 눈동자

점점 초점을 잃어간다

 

눈이 감긴 어미

뼈만 남아 바닥을 뒹굴고 있다

 

 

따옴표 피는 나무

 

살며시 꽃눈을 열고 봄을 알리는

봄의 알림이 꽃

그 속은 온통 축제의 물결

소리 없이 작은따옴표 만들어

봄을 옮기고 있다

 

나무 곁눈에 숨죽이고 있던 아이들이

노란 우산을 받쳐 들고

새 학기 원복을 똑같이 맞춰 입고

작은따옴표 모자를 쓰고 나온다

 

노란 속눈썹이

붉은 수정 알로 서서히 익어

아픈 이들을 위한 큰따옴표 열매가 되었고

가슴 안에 새끼도 잠들어 있는

아이 엄마가 되었다

 

다 익어버린 큰따옴표

빈 나뭇가지를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사랑에 열매

사랑의 종 나무

겨우내 남의 말만 인용하다

사랑을 나누는 봉사를 하고 있다

 

 

 

유발과 유봉

 

너와 나는

여명과 낙조

해와 달 같은 사이

 

평생을

달그락거리며 내는 소리는

산사의 풍경 소리

고통과 애증을 다듬어주는

신의 숨소리

 

유발은 아버지의 발

유봉은 어머니의 손

히포크라테스의 손과 발

 

원을 그리며

돌고 도는 약사여래불

모든 이의 앰뷸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