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정령 시인'

정령 시인의 詩 시의 수적 논리 외 4편

 

정령 시인

충북 단양 출생. 2014년 계간 리토피아등단.

전국계간문예지작품상수상. 막비시동인. 부천문협회원.

시집 연꽃홍수, 크크라는 갑, 자자, 나비야.

 

 

 

시의 수적 논리

 

자음과 모음이 공중제비를 하는 시간은 미지수,

곤두박질치며 구르고 굴러서 허방에 고인다.

 

허방에 고인 자음과 모음들이 떠나는 날은 자연수,

길을 가다가 차이고 책을 보다가 채이고 글을 쓰다 쓰러져

퇴비처럼 쌓이고 쌓여서 거름이 되어 뿌려진다.

 

거름이 되어 뿌려지는 자음과 모음들의 꿈꾸는 달은 함수,

그토록 기다려 다지고 다지다보면 행간 사이로 싹이 트고

무시로 구르고 차이면 다져진 글자들은 행간을 행군한다.

 

꿈의 조합으로 변하는 건 글자들이 시가 되는 날의 변수,

자음과 모음들이 수적 논리로 엮은 공식 위에 수시로 선다.

 

 

 

 

꽃무릇

 

철마다 연등 밝히던 손

가닥가닥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가

백팔번뇌 고개 수그리다 오뚝

마음 먼저 보시하려고 오뚝

합장하고 서니

! 부처님! 관세음보살

 

 

 

 

 

연꽃 홍수

 

몰랐었네. 비가 오면서 시나브로 개울을 덮고 논밭을 쓸고 댓돌을 넘을 때까지 그칠 거야 했었네. 못물이 차올라 있을 때는, 차마 그러리라는 것을. 물살에 휩쓸려 정처 없이 흘러가던 송아지의 애처로운 눈빛을, 가시연꽃 잎 떠다니는 혼탁한 못 속의 연보라빛 봉오리를 보고서야 알았네. 지게 한 짐 지고 건너오시던 아득한 선로 위, 눅진한 홍수 끝에 저리도 넓적한 등판으로 하늘 밑에 연잎 떡하니 벌어져 알았네. 장독 엎어지고 깨어지고 허물어졌어도 대추나무가지에 매달린 솥단지 내걸고 푹 퍼진 수제비 뜰 때, 켜켜이 연이파리 못 속에 앉아있는 걸 보고야 알았네. 흙탕물에 절은 방바닥 물 때 벗기고 푹 꺼진 마루 훔치던 후덥지근한 그 날의 태양, 발그레 붉어진 연꽃이었네. 책장에 촘촘히 꽂혀있다 물벼락 맞은 몸들 낱장 헐지 않도록 다림질하여 말리던, 한 여름의 연잎들이 책갈피 같은 연밥을 내주는 걸 보고야, 홍수였네. 연꽃 홍수. 푸른 잎 펼치고 유구한 세월을 안아 떠받치고 온, 중생들의 벅찬 환호성. 연꽃 물결, 홍수로 일렁거렸네.

 

 

 

 

 

신 단군신화

 

너만 좋다면,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사람 손길 닿지 않은 비밀동굴을 찾아야지. 비밀동굴에 풀잎 따다가 푹신한 침상 만들고, 예전에 도망간 호랑이랑 곰도 불러서 짝짜꿍도 하고 늑대랑 여우도 불러서 칡넝쿨처럼 어울렁더울렁 맨살 비비며 뒹굴어봐야지. 날이 새면, 제일 먼저 옹달샘으로 찾아가 달 속에서 떡방아 찧던 토끼랑 계수나무 밑에서 자고 있던 토끼랑 꾀 많은 토끼하고 반가이 마주하고 물도 마시고, 청설모랑 다람쥐랑 도토리 까며 비석치기도 하다가,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베고 누워 나뭇가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도 듣고, 밤이면 부엉이랑 올빼미도 노루랑 꿩이랑 깨워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풀벌레와 쫑알거리며 알까기도 하다가, 노란 달과 마주하고 주거니받거니 밤새도록 술 따르며 왕게임도 할 수 있다는데, 다시 마늘이랑 쑥 줄게. , 먹으러 올래 안 올래?

 

 

 

 

 

 

 

봄맞이꽃

-치매입담·6

 

길가에 쪼그려 앉아 꽃이 좋다고 허리를 구부리는 어머니

조그만 꽃이 엉덩이에 깔리면 어쩔까 발에 밟히면 어쩔까

어째 이리 고울까 미워죽도록 너무 예쁘다고 삐죽거리며

작디작은 하얀 꽃들이 저보다 예뻐 보인다고 호들갑이다.

 

난리다. 벌이 날고 나비가 날고 어머니 눈동자도 따라 난다

벌들이 윙윙 춤을 추고 나비들도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작은 꽃들이 어머니의 환한 얼굴을 보고 헤죽헤죽 웃는다.

 

어머니 손가락 수 만큼인 꽃잎, 다섯을 못 세도 좋아

괜찮으니 옆에만 있어달라며 봄맞이꽃이 말갛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