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금희숙 시인'


금희숙 시인의 시 별을 보여드립니다 외 4편

 금희숙 시인

 제주 출생, 현 서울 거주

 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20 영남일보 문학상 시 부문 당선

 

 

 

 

 별을 보여드립니다*

 

 누가 주사위를 던졌는지 놀이터에 옥상을 만든다 그림자를 벗는 아이들, 계단 사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움켜쥘수록 달아나는 모래알, 미끄럼틀을 반복하고 고개를 돌린다 놀이터는 이제 환하지 않고 시소는 종일 공중과 바닥을 되풀이한다

 

 외짝 운동화 아무렇게 나뒹굴어도 매일 옥상은 높아지고 아름답습니다 식어 버린 신발주머니를 껴안은 아이가 혼잣말을 세는 동안,

 

 저녁과 철봉 사이에서 아이는 사라지고

 

 뒤꿈치까지 놀이터는 희미해지는데

 맨발은 자꾸 두리번거리고

 

 

 그네를 힘껏 밀어도 옥상은 여전히 바닥이여서

 그늘을 밟고 오늘을 꺼내도

 

 이곳은 몹시 답답하고

 내일은 좀 더 작아져야 합니다

 

 *이청준의 소설 제목 차용

 

 

 

어쩐지 두 발을 세우면 이름을 알 것만 같아

 

 너무 많은 새들이 날아와 잠을 깼다 소리가 벽을 타고 가지를 뻗고 있었다 방마다 몰려다니는 아이들, 창문은 열려 있는데 날개가 멈췄다 천장보다 조용하게 아주 납작하게

 

 무사한 밤은 어디에 있을까

 

 똑같은 잠옷을 입으면 꿈도 관처럼 열리지 않을 텐데, 뒤집어진 양말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왔다 엉키면 툭 끊어지는 필름처럼 잠깐 어두웠다 그늘을 문지를 때마다 잠꼬대를 했다

 

 다행이야, 달력을 잃어버렸는데 가지는 계속 늙어가고 있어

 

 의심이 자라는 동안 새들은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충분히 둥지는 휘청거렸다

 

 대롱대롱 마른 가지를 붙잡았다 공중은 부족해지고 발등은 오랫동안 흔들렸다

 끊어진 꿈을 다시 연결해도 바뀌지 않는 손금,

 

 어쩐지 두 발을 세우면 이름을 알 것만 같아

 

 밤마다 머리카락을 헤아린다

 시계는 멈추지 않았고 아이들의 발가락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걸 설명하지 못했는데

 

 새들은 건조해지고

 해쓱해지는 발자국

 

 우리는 차마 잠옷을 벗을 수 없었다

 

 

 

 스포츠스태킹

 

 누가 깨우는지

 나는 가벼워서 높아지고

 

 시간을 두드리면 어디서 부르는 것 같아

 

 탁자를 지날 때 무거워지는 초침 소리

 

 소리를 펼치면 바닥은 다시 숲이 되고, 함께 흩어지는 양떼구름들

 

 제대로 꺼내도

 가까워서 미끄러지는 약속은 여러 개

 빠르게 무너지는 하루는 멈추지 않는다

 

 완벽한 손목는 천천히 올라갈 수 없어

 반복된 실패는 질문의 속도를 앞서가지 못하고

 

 나는 엄마를 배우기 전에 일어선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바닥을 집어 올린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공중을 접는다

 

 좀 웃고 싶은데

 쏟아진 구름은 정수리부터 웅성거리고

 시계보다 빨리 정확해야 하므로

 

 부딪히고 엎어지며

 함부로 뛰어내리는데

 

 간격은 열두 개, 허공을 짚고

 

 나를 밟는다

 

 포개지는 것들이 허물어지고 있다

 

 

 

 도시는 눈먼 자들로부터

 

 모자 뒤에서 그림자를 만진다 심장이 뭉개지고 빛이 사라진다 손바닥을 활짝 내밀어도 컴컴해지는 방향, 모자의 중심을 빙빙 돌려본다 접시처럼 뾰족해지는 불안,

 

 그림자를 계속 밟아도 모자는 구부러지지 않고

 누군가의 목소리는 구겨지기도 했는데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 없을 때, 비로소 말문이 트이지

 

 어차피 절반의 이목구비로 내일의 눈물을 설명할 수 없어

 소문은 무덤보다 앞서가고, 문득 멈추고 싶었을 때 혼잣말을 더듬거릴 뿐,

 

 식은땀을 껴입고 우리는

 암실처럼 아무것도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어둠이 평면이 될 때까지

 자정을 눌러 쓰고 걷는다

 

 이따금 알 수 없는 발자국이 타르처럼 흘러내리고

 흙 묻은 기억을 뜯어버려도 이곳은 여전히 모자를 벗을 수 없었는데

 

 우리는 퍽퍽해진 눈으로 충분히 슬퍼지고

 

 깨어날 때마다 증명할 수 없는 어둠,

 종종 이곳에는 그림자들이 등을 맞댄다

 

 

 

포노 사피엔스

 

유모차는 미리 늙어갑니다

 

똑같은 장난감을 만지면 계속 넘어지고

인공위성의 속도로 걸음마를 배워야 하는데요

 

반짝거리는 액정을 젖병처럼 빨면

손바닥만큼 엄마가 웃고 있어요

 

터치로 선생님을 밀어내고

클릭으로 친구를 선물하고

종소리는 아무래도 허용하지 않아요

 

아무리 껴안아도 따뜻해지지 않는 방

매일 손잡이를 돌려도 나를 찾을 수 없어요

 

불안은 얼마나 뚱뚱해지는지

모자를 벗어도 표정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개 없이도 새가 되고

오늘보다 더 빨리 오늘이 쓰러집니다

 

울음은 턱받이에서 말라가고

눈동자는 쉽게 예민해집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를 믿지마세요

여전히 풍선은 위험하니까요

 

 

이제 옹알이는 퇴화되고

 

우리는 기계보다 먼저 완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