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장흥진 시인'

첼로 외 4편

※ 장흥진 약력

홍성 출생

공주교육대학 졸업

홍주문학회 회원(창간호∼제3호)으로 활동

1988년 물레시 동인 시집 ‘화요일 오후’ 출간

2000년 ‘시문학’ 으로 등단

2020년 시집 ‘야윈 당신’ 출간 

 

 

 

 

 

1. 첼로 

                             장흥진

 

 

 

쓰레기장 입구

부서진 의자에 기대어 비 맞고 있다

줄은 낱낱이 끊어져 뒤엉켜 있고

활도 사라졌다

울타리 너머

큰길을 지나던 바람이

사나운 소리를 내며

헤어졌던 오랜 혈육을 만난 듯 달려들어 

그의 눅눅한 몸을 얼싸안는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

둘은 진흙탕 속으로 곧 나동그라질 듯 하다

 

그가 평생 불렀던 노래는

다 어디로 갔을까

호들갑 떠는 바람이

그를 편히 눕히려고

안간힘을 쓰는 저 바람이

그 노래는 아닐까

세상을 돌고 돌아온

몸을 떨며

흐느끼듯 그의 전신을 적시는 빗물이

그 노래는 아닐까

 

 

오늘 우리가 무심히 부르는 노래도

언젠가는 

저렇게 살아 돌아와

처연히 우리를 눈 감겨 줄까

 

 

 

 

 

 

 

2. 여름 밤

 

                             장흥진 

 


                                     
언제부터였을까 보일 듯 말 듯
푸른 벌레 한 마리 여린 풀잎 위에 누워 있다
작은 몸을 길게 늘여
새로 그린 나란히맥 무늬결인 듯 새침하게
이 아늑한 방을 찾아오느라
칠월의 햇빛에 달아오른 어지러운 눈동자를
풀빛에 가만히 헹구고 있다
바람이 풀잎을 흔드니 벌레도 흔들린다
사르르 자장가처럼 흔들리다
풀잎이 어두워지니
벌레도 어두워진다
자장자장 더 어둑해질수록
동그랗게 몸을 말며 벌레는 깊이 잠이 든다
바람도 나무도 별들도 잠이 든다
풀잎만 깨어 있다
벌레의 무게로 출렁이는 오늘 밤
벌레의 깊은 잠을 헤아리며
풀잎은 아까부터 자는 시늉만 한다

 

 

 

 

 

 

 

3. 야윈 당신 

                           장흥진

 

사람이 칼이라면

방패 또한 사람이다

사람이 한숨이라면

사람이 흐느낌이라면

반짝임과 눈부심 또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유없이 모습을 감추나 보다

잠깐 한눈 파는 사이

아니아니 내내 지키고 있었어도

구름 따라 강물 처럼

캄캄한 시간 속으로 흘러간 사람

그래서 사람은

방패가 아니다

칼도 아니다

반짝임과 눈부심도

한숨과 흐느낌은 더욱 아니다

광활한 우주의 한 점 먼지일 뿐

다시 오지 않는

그 사람은

 

 

 

 

 

 

 

 

4. 대代 

                            장흥진

 

 


팔순의 외할머니와

곧 회갑을 맞으실 어머니

서른의 내가

이제 막 삼칠일 된 우리 아기를 보고 있다

두 눈 총총 별이 박힌

우리 아기는 알까

방안 가득 흐르는 따스한 물결

할머니와 어머니 몸에서 넘치던

이제 내 몸을 지나 아기에게로 흘러갈

깊고 푸른 강


어머니가 할머니 품에 아기를 안겨드린다

검버섯 핀 두 팔로 아기를 안고

금세 함박꽃 되신 우리 할머니

노래하듯 가만가만 아기를 어르신다

 

30 년 전에

네 에미는 요렇게 너처럼 작았단다

네 할미는 네 에미처럼 저래 저래 고왔구

네 에미는 요렇게 너처럼 작았단다

네 할미는 네 에미처럼 ‥‥‥ 잠깐만요 할머니

 

스무 살적

할머니는 복숭아꽃

그 고운 팔에 안겼던 어머니는

작디작은 우리 아기

두 눈 총총 별이 박힌 우리 아기

스무 살적 할머니는 복숭아꽃

그 고운 팔에 안겼던 어머니는‥‥‥

 

할머니

그 때가 겨우 60년 전이네요

 

 

 

 

 

 

 

5. 가족사진

                           장흥진

 


흰 광목 앞치마 차림의 어머니는

젖은 손을 뒤로 감춘 채 아버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단발머리 까까머리 형제들은

앞에 세운 막내를 호위하듯 둘러서 있다


솟대처럼 키가 크신 아버지

먼산 보며 애써 웃고 있지만

눈가의 그늘이 짙다


에이 아버지 때문에 사진 망쳤어


앞니 빠진 자리까지 환한

햇살 표정의 막내

어느새 아버지 나이가 되어

입 바른 딸 키워보니 알겠다


웃는다는 것이

잠시 활짝 웃는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족사진 속

아버지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