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조영환 시인'

진달래꽃 외 4편

 

[이름]조영환시인 
[약력]충북 괴산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계간 『다시올문학』 시부문 등단
다시올문학회 회장
흰뫼문학회 동인
동인 시집 『햇빛을 만지다』 외 다수

 


 


1.진달래꽃
                                조영환
한 번도 그대를 안지 못했네
환한 서러움
안기도 전에 마음 가득 물들어
 


 
2.사랑
                           조영환
월출산 벼랑에 소나무가
내 마음 천 길 암벽에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천 년의 바람이 불었을 게다
억 년의 눈비가 내렸을 게다
억겁 세월 당신은 솔씨처럼  
나를 스쳤을 게다
사랑은 어떻게 왔는가
 

 
 
3.외포항(外浦港)에서
                               조영환
강화도 외포항에서 
볼음도 가는 배를 기다리네
섬에 와서 또 섬으로 가려 하네
섬인 자가 섬을 그리네
세상의 모든 글썽이는 저녁은 
외포항으로 모여드네
새들은 성글고 아픈 날개를 
외포항의 품에 접고
먼 바다 떠돌다 온 물결은 비단보다 
부드러운 숨을 그 무릎에 내려놓네
외포항은 안을 열어주는 포구
섬에 와서 섬을 꿈꾸는 자에게
가없는 바깥인 안을 열어주는 포구

 
 
4.동백꽃
                                         조영환 
바람도 없는 사월 중순의 대낮 
강진의 백련사 뒤란의 훤칠한 동백나무가 
화장대 앞에서 입술연지를 덧칠하고 있다.
껑충한 키에 진초록 회장저고리를 입은 
말상의 서모(庶母)는 단 한 번도 
붉은 눈을 누구에게 들킨 적이 없다.
한겨울의 동백꽃은 
동박새 울음의 높이에서 핀다.
툭, 툭 검게 타든 눈자위가 
볕바른 뒷마당에 떨어지고 있다.
동백꽃은 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동백나무가
저 가득한 물 항아리의 붉은 물이 
바람도 없이 일렁거렸다는 것.
당신에게 가는 누군가의 마음도 
그저 엎질러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눈에 동백나무는 동백나무 이전의 나무이고
나는 비로소 내 물 항아리의 연원을 알 수가 없다.
물 항아리의 물이 일렁거린다.
저 동백나무는 물경 사백 년을 
새붉게 입술만 덧칠하는 연애를 한다.
몸이 잠시의 꿈이 아니라는 듯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진저리처럼 동백이 붉다.


 
5.대게
                                조영환
 
스물다섯 해 전,
경북 덕구의 탄광촌에서 스스로 세상을 버린
젊은 사내의 무덤을 끝내 찾지 못하고
동해 죽변항에서 대게를 사네.
 
심해 어둠 속에서 슬픔 대신 다리가 길어진 대게
 
항구의 생선 장수는 
대게를 산 채로 쪄야 맛있다고 
얼음을 채운 스티로폼 상자에 
서둘러 대게를 담네. 
 
그러나 생선 만지는 일로 늙은 
사내의 잰 손놀림보다 
죽음을 본 대게의 눈은 빨라 
상자 뚜껑이 닫히는 순간에도
대게는 막막히 세상에 손을 내미네. 
 
저 비린 손 못 잡아 
평생을 얼음 속에서 
번들거리며 젖어 있는 
대게의 눈, 
한 생을 유폐한 수인(囚人) 
어두움이 온 사내의 노모
 
명년 봄에는 물가 무덤 자리들을 다 파야 한다고
얼음 창고에서 어기적거리며 나온
늙은 대게의 손을 동해의 대게가 잡아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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