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김루 시인'

낙타의 눈물 외 9편

 

[이름] 김루

[약력]
* 2010년 현대시학 신인상

 

 

 

 

 

 

 

 

 

 

 

1. 낙타의 눈물
                                                                                                           김루

   어둠이 내리면 몸 속 어딘가에서 낙타의 울음소리 들린다 게르 앞에서 나는 
    무릎 꿇고 비밀스런 의식을,
 
   제단에 올릴 수 있는 건 마두금 연주뿐이므로 
   향은 노을빛이다
 
   예복을 걸쳐 입은 옥빛 바람
   당상집례로 홀기를 읽는다 
 
   아직도 사막 위를 부유중인 새끼여,
 
   주술가처럼 광활한 초원 불러들인다 우주의 뱃속, 
   낙타의 호흡 가다듬으며 
 
   떨어져 나간 너의 한 쪽 귀를 찾아 구름의 행렬 따라 길을 나서는 저녁
 
   길을 믿지 않는 너는 오늘도 독수리로
   어느 죽음을 파헤치다 쓸쓸히 
   어둠을 파고들겠지
   이제 평화롭게 불을 지피자 
 
   땅거미가 지고나면 이국의 어느 숲에서 내가 걸어 왔던 길들 사이
   네가 있었노라,
   달빛 편지라도 띄울 때면 
   초원은 살아 선한 눈빛으로 내게 안길까,
 
   웅얼웅얼 울음통이 되어버린 사막
   짙은 눈썹 사이로 홍예는 아스름 피어오르고 

 

 

 

2. 마야의 집
                                                                                                           김루 
 
 머리가 하얀 꽃의 사타구니에 기저귀 채워야 해요 
 붉은 칸나가 되지 못한 그녀
 벽과 벽 사이로 누런 꽃 수 놓아요 조각조각 난도질을 유혹하는 방바닥, 성냥팔이
  소녀 되어라 해요 

 환한 불꽃
 겨드랑이가 따뜻해져요 꽃가지 타들어 가요 
 놀란 눈빛, 
 달려온 달팽이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회의 중이에요 

 긁을 수 없는 슬픔이 진수성찬인 아침
 
 꽃 뿌리 화분으로 옮겨 심어요 거름을 깔아요 영양제도 꽂아요
 잊지 않고 꼬박꼬박 웃음도 챙겨요 
 다소곳이 앉아 햇살을 받아먹는 칸나
 잘잘잘 꽃물 흘려요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과자부스러기로 온 방을 굴러다녀요 밟히는 시간이 모래처럼 서걱거리는 한나절    책상 위의 여자는 웨딩드레스로 하얗게 피고 있어요 
 그녀는 지금 피고 있나요?
 
 밥상 위를 붕붕 날아가는 파리의 물음이 틀어놓은 수도꼭지 수압에 눌려 흩어져요
 칸나로 피어 날 당신, 
 몇 방울의 눈물 십자가로 걸어두고 참 경이롭게 기저귀 채워 달라 웃는 시간이에요


 


3. 검은 동화
                                                                                                           김루

 서재에 꽂힌 슬픔을 복사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허공에 꽂힌 행복을 빼 보겠다고 뜀박질을 하다 루루루루루루 나를 낳으셨다는 당
 신,
 좀이 슨 금서목록 일기장을 펼치면 

 울음이 돌아 불어터진 젖꼭지 
 검은 슬픔을 빨다 
 중세의 암흑 같은 잠에 빠진 나를 안고 
 초록 검정 노랑 다중인격의 모자를 쓰고

 가끔은 
 존재하는 것들을 잘라 버려야 과즙의 향도 맛볼 수 있는 거란다

 아기집을 자르듯 나를 잘라 버리고 
 헬륨을 받아 마신 풍선처럼
 날아간 

 이모, 
 이모하고 부르면 혀에 착착 감기는 정겨운 목소리로
 그렇게 부르는 건 누구를 위한 호칭인거니?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파랗게 물어오는 당신

 

 


4. 그곳이 뜨거워지면
                                                                      김루

 나는 사각이다 인에 뾰족한 모서리를 박고 사는 은둔자 
 감각 없는 맨몸이다 

 텅 빈 알을 품고 무릎 꿇은 머리에 불을 붙인다 
 밤도 낮도 구별 되지 않는 지하방 
 겨드랑이에서 꼬물거리는 새끼들은 배달 되어온 나의 천사 성자들이다 

 묻지 말아야지
 잉태를 위해 얼마나 오래 끓는 물속에서 내가 보글거렸는지를

 냉기뿐인 바닥에 엎드려 보헤미안 꿈을 연기로 들이마신다
 머리가 타들어 갈수록 펼쳐놓은 동화 속 늑대가 환해져 온다 이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 그 곳에서 나를 염탐중인 늑대
 
 촛농을 떨어뜨린다 

 불붙은 비명들이 물벼락에 모락모락 잠들고 나면 
 완벽하게 나는
 걷는 사람이 될까

 겨드랑이의 아이들은 경쾌해진다

 

 


5. 어디일까요
                                                                            김루

알몸으로 오세요. 원하는 곳에 말이에요. 잘 익은 몸이라 깊
은 맛은 날거에요. 입맛 없는 계절, 가슴이 봉긋 차올라 입안
은 온통 가시덤불이에요. 

손가락이라도 잘라 주세요. 휘파람이 유리조각이에요. 언제까
지 갇혀 숙성만 해야 할까요. 모르는 척 버려둘수록 짓물러진
혀는 어디로 사라지는지,

한 모금만 한 모금만 그러다 날 새겠어요. 달싹이는 입술로
웃지 말아요. 독한 위스키는 울음이 아니잖아요. 메아리인거
지. 

흘러내리는 유리창의 빗물이 포개어지면 당신의 아침은 어디
일까요. 묻는 사람도 없는 지구가 참 쓸쓸해요. 솜털이 자라는
나는 울음을 타 마셔요. 한 방울, 한 방울, 

손목 긋는 밤이에요

 

 

 

6. 우리 동네 피터팬

                                                                                                 김루

 해가지면 허기가 져 오빠, 오늘은 종일 기계에 젖을 물렸어 급했거든 등 뒤의 난
로에 연기가 치솟는 것도 모른 채 젖을 물리다 보면 우리의 칼라 세상은 밝아지겠
지 

 미이라 같은 그녀가 연주하는 하프의 세상은 눈이 멀 정도로 화려해 오빠, 오빠도
아마 그녀에게 만은 젖을 물렸을 거야 빨강 노랑 검정 물리는 젖도 다양이야 산비
탈의 염소는 초록 젖통만 보면 달려와 젖을 달라 주문을 넣어 

 정신없이 허둥대다 젖의 비율을 잊고 빈 젖을 물렸어 오빠, 잘했지 오늘은 젖꼭지
가 까매지도록 젖을 물려야 하니까 자정과 자정의 경계를 잊고 미분양 보금자리를
위해 기계는 돌아야 해 오빠, 오빠가 있었으면 피터팬이 되어 내 손 잡아 줄 텐데
난 다리를 잃고 오빠는 숨을 놓쳤던 그때, 슬픔은 어디서부터 번지기 시작했을까 

 쓰나미가 오기 전부터 번지던 슬픔이었을까 가끔 점프하는 고래를 만나면 물속에
서 숨을 내뱉는 오빠를 만난 것 같아 박수를 치고 놀라곤 해 오빠, 우는 걸 잊어버
린 나는 심장이 굳어 버린 것일까 외로움에 갇힌 것일까, 걸을 수 없는 오늘 보다
걷던 어제가 더 슬픈 날엔 기계에 젖을 물려, 천천히 오래오래 

 

 

 

7. 귓속말
                                                                                                       김루

 느닷없는 그 말은

 삿포로의 거리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몰라요 발자국이 남지 않는 걸음을 따라 물
드는 일은 
 이상한 징후 같았어요 
 10월의 단풍도 눈물을 삼키는 것만 같은,

 슬픈 월요일
 건널목은 수많은 발자국이 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가을이 깜박이는 줄도 모른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머리 위로 펑펑
 첫 눈이 내리는 줄도 모른 채

 나, 사랑해요?
 물어오는 그 말처럼 

 눈은 쏟아져 내리고 
 지워지지 않는 귓속말은 하얗게 쌓여만 가는 월요일

 나는 장님
 나는 귀머거리
 나는 바람 바람 바람

 바램이 바람으로 얼마나 더 펄럭거려야 나를 얘기할 수 있을지

 젖은 발자국은 
 얼어버린 것들을 위해 
 자작나무 숲에 쌓아둔 
 약속의 손가락들 죄다 불태울까 생각중이에요

 

 

 

 

8. 행위
                                                             김루

 마우스가 이동 중일 때 당신의 페이지는 58쪽

 바쁘더라도 우리 
 잠시만, 
 꽃이 피는 속도로 가면 안 될까?
 불안해 손톱을 물어뜯는 내게 문을 열어 준 당신

 죽은 것도 아닌데 
 죽은 것처럼 살아온 발자국이 폐허는 아니었어요

 미끄러지듯 바퀴 너머로 하얀 배꽃이 피던 그날
 우습더라구요

 어딜 가기 위해 그토록 우린 하얗게
 어딜 가기 위해 그토록 우린 한꺼번이었는지
 밑창 떨어진 운동화를 보며 피식 웃고 있는 내 옆구리에서 툭 터져 나오던 입들 

 당신은 보았을까요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주렁주렁 달린 귀를 잡고
 어제는 사막 어제는 낙타 어제는 직진 어제는 추락, 버둥거리다 결국 위로의 말을 잃고 주저앉아 버린 그때

 58쪽 당신의 페이지는 
 山門을 향해 끊임없이 삽입 중이었지요

 바쁘더라도 우리 
 잠시만, 
 꽃이 피는 속도로 가면 안될까

 

 

 

9. 은단시리즈 1

                                                                                                    김루
 우리 은밀해진 사이일까요. 

 목멘 사람의 집을 사이에 두고 웃는, 
 비 때문인가요. 난로의 장작불은 방향도 없이 타 오르고

 목덜미로 옮겨 붙은 불꽃은 곧 사그라지고 말겠죠. 흥분은 금물이에요. 잠시 

 시선을 돌려요. 괜찮으시면 입안에 꽃 한 번 피워 보실래요. 구린내 나는 입속 가득 꽃이 피는 날에는 
 포터의 사다리가 몸을 바꿔 하늘 길을 열진 않을까

 꿈꿔 보기도 해요. 피가 베이도록 움켜 쥔 밧줄의 손이 발견되기 전까지 은단으로 전 환했거든요. 

 눈치 채셨나요.

 마당의 수선화가 휘파람으로 태어나도 첼로의 연주는 더 이상 켜지 않는다는 걸. 

 그러지 말고 동글동글 화하게 우리 
 다시 은밀해져요. 비가 오는 밤이잖아요. 녹아내리다 멀어져 간 10초 목덜미를 위해 장작으로 활활 타 보는 건 어때요.


   

 

 

10. 순간에는 갸웃이 없다
             - 구조조정

                                                                    김루
 칼을 물었습니다
 생글생글 손가락이 웃고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오똑한 콧날의 당신은
 
 과거일 뿐입니다
 줄을 맞춰주세요

 칼을 문 순간은 죽음도 동반된 길의 시작입니다

 앞서 뛰지 말아주세요
 성급하게 달리는 당신의 걸음에 
 바게트처럼 내 혀가 
 아니 당신의 목이 달아날지 모릅니다

 모두가 발 내딛는 허공
 작두의 세상에서 함부로 발
 내밀지 말아 주세요 

 발을 헛딛는 순간 당신의 혀는 바닥에 깔려 오른발 다음에 왼발 발이 보이지 않게* 달려온 길이

 싹둑,
 너 대신 내가 
 나 대신 우리가 
 몰아치는 비바람에 견뎌야 하는 가을은 아직 화창입니다

*김행숙 <세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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