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최명심 시인'


최명심 시인의 詩 겨울새 외 4편

최명심시인 약력

경기도 출생

부천여성문학회장 역임

부천문화예술공로상 수상

인천문인협회 회원

내항문학회 , 다시올 문학 <전망 >동인으로 활동

시집 <안개는 부레가 없다 >(2018 )

동인지 <고양이 골목 >외 다수

 

 

겨울새

 

자작나무 가지에 얼어붙은

새 발자국

 

지난가을 떠난

철새의 빈 둥지 하나

하얀 눈에 덮여간다

 

자작나무 언덕에

한나절 눈발이 지나가고

겨울 숲은 발이 시리다

 

해가 져도 숲은 어두워지지 않고

둥지에 깃들지 못한 새 한마리

이 가지 저 가지 날아다니며

숲을 깨우고 있다

 

 

 

맹꽁이

 

비가 오는 날이면

코를 잡고 시작하는 놀이

 

맹꽁” “찡꽁

맹꽁” “찡꽁

 

맹꽁 선창하면

찡꽁 해야 내 코를 놓아주던 오빠

빨개진 코를 잡고 눈물 쏙 빼고 있으면

알사탕 하나 입에 쏙 넣어주더니

 

그해 여름 ,

바가지를 엎어 놓은 듯

맹꽁이처럼 퉁퉁 부어오른 배를 받쳐 들고

배꼽조차 손에 닿지 않아 순한 눈만

끔벅거리며 떨고 있던 오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오빠의 손을 잡고

맹꽁 찡꽁 맹꽁 찡꽁해보지만

오빠는 기어이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여름이 가기도 전 눈을 감았다

 

장맛비는 퍼붓고 개천가에서

맹꽁 찡꽁 맹꽁 찡꽁

맹꽁이만 오래도록 울었다

 

 

빈집

 

양철대문이 붉게 녹슬어 있다

경첩이 삭아 반쯤 기울어진 문

마당엔 엉겅퀴 쑥부쟁이 기린초가 몸을 섞고 있다

 

서까래가 주저앉은 처마 끝에선 옥수수가 말라가고

검은 장화 한 켤레

먼지가 내려앉은 마루 끝에 걸쳐있다

격자무늬 창살이 부서진 창호지엔

빛바랜 압화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금잔화 압화에 잠시 손을 올려본다

내 손끝에서 바스러지는 꽃잎들

창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꽃잎들이 무너진 담벼락을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갈라진 벽 귀퉁이에 걸려있는 낡은 바지

얼마나 오래 저곳에 못 박혀 있었을까

찢어진 벽지 위에 까맣게 곰팡이가 피어있다

 

저 방에서 꿈을 키웠던 사람들

지금은 어느 도시 , 어느 변두리에 스며들어서

또 곰팡이처럼 까맣게 피고 있을까

 

 

 

할미꽃

식구들 깰세라 살며시 , 호미를 쥐듯 새벽을 움켜쥐시고

수풀을 헤치며 텃밭으로 가신길 ,

이슬보다 먼저 땀에 젖었을 할머니 당신을 떠올려 보니

지금 내 앞에 산만큼이나 크게 다가옵니다

목덜미로 흘러내린 저고리에 드러난 , 호미갈퀴처럼

완고한 , 당신의 등허리를 나보다 먼저 아침 해가

어루만질 때 , 내가 저고리를 끌어 등허리를 가리고서야

허리를 펴시고 콩밭에 솎아낸 잡초더미에 앉아

젖은 치맛자락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시던 당신

항아리가 얼마나 깊었던지

한 줌 끓는 가마솥이 얼마나 넓었던지

가뭄에 갈라진 둘레 없는 못처럼 , 삼순구식 밥상에

부족한 젖의 갓난이 막내 손녀 , 당신의 기억에

나를 앞장세우던 당신의 땀과 눈물로

간을 맞춘 내 어린 시절

할머니 , 당신의 손녀가 손녀와 함께

들길을 걷다가 할미꽃 앞에 섰습니다

태어나 처음 당신에게 익혔던 할미꽃

나의 할미꽃이 손녀의 눈에 가득한지

와락 , 주저앉은 손녀가 인사드리는듯

내가 , 할미꽃 할미꽃

손녀가 할므이꼿 , 할므미꽂 , 할미꽃

분명해져 가는 손녀의 발음처럼 또렷이 , 할머니

당신의 모습 이제야 떠올립니다

할머니 , 당신의 흰머리 날리듯

바람에 떨어지는 하얀 꽃잎 , 내 머리에 이고 서서

저만큼 가고 있는 손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동고비

 

계양산 둘레 길을 걷다가

고목에 바싹 붙어있는 작은 새를 보았다

나뭇가지와 가지를 옮겨다니며

딱따구리가 살던 낡은 구멍 안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동고비였다

 

가만가만 스며든 내 발소리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던 새

살며시 구멍 안을 들여다보려는데

돌연한 사태에 놀란 듯 배설물을 쏟으며

파드닥 날아가 버렸다

 

동고비의 눈빛을

내가 읽을 수 없듯이

미처 나를 읽지 못한 새가 날아가 버린 후

그 곳에는 덩그러니 빈 구멍만 남았다

 

부천역 지하도 입구에서

몸을 거북이 등처럼 둥글게 말고 있던

한 남자가 생각났다

이마가 바닥에 닿을 듯 엎드린 채

펼치고 있던 두 손에는 동전이 가득했다

경비원의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

지하도 밖으로 급하게 사라지던 남자

 

제 집을 다 짓지 못하고 날아가 버린 동고비처럼

지금 그 남자는 어느 곳에서 그의 집을 짓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