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김광진 시인'

김광진 시인의 詩 비온 뒤 외 4편

 

김광진 약력

등단 : 2016년 문학광장 시

      2015년 동산문학 동시

작품집 : 시집 : 두물머리 산책. 십 오분 사이  

        동시집 : 숨어보기

수상경력 : 2020황순원양평문인상 수상

: 한국문협회원

 

 

비온 뒤

                     

묵정밭 흙을 퍼다 담은 화분

입춘 지나 소만 되니

쑥 냉이 좀씀바귀 새싹이 수없이 돋았다

심지 않은 것이라 싸악 다 뽑았다

입하 지나 하지

질경이 괭이밥 빈대풀 또 잔뜩 났다

또 뽑았다

이것을 뽑으면 저것이 나고

저것을 뽑으면 그것이 나고

번호표 받은 것처럼

줄기차게 새싹이 돋아났다

거무튀튀하고 흔하디흔한 맨흙 속에

이렇게도 많은 생명이 살아있었구나

돋을 싹이 해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 나도 한때 너의 묵정밭이었던 것을

 

 

 

대숲에 이는 바람

                           

휘어져도

꺾이진 않았다

속을 비우고

칸칸이 마디를 맺었다

메말라 앙칼진 댓잎

칼로 벼려져

부딪는 곳마다

생채기 되어

목이 쉬어 ㅅ 소리가 난다

바람 가는 길

외줄 타고

대숲 지난 바람

상처투성이다

서슬 퍼렇게 하늘 찌르면

지나온 길이

화려했던 만큼 고달프다

 

 

 

백팔십그램

 

너 없인

못 살 것 같다

눈뜨면 너부터 찾아

세상의 창을 열고

안부를 묻는다

한 번도

기대에 어긋나거나

아무 것도

바란 적 없는

나의 아바타

가벼워도 무겁고

작아도 꽉 찬

이제는 정말

너 없인 못 살겠다

 

 

 

 

 

회색 바람은

서북쪽에서 불었다

어금니를 꽉 물었다

돌아가는 톱니처럼 물렸다

턱관절이 얼얼해지자

차라이나* 이빨 떨리는

소리가 커졌다

웃음도

달콤한 키스도

멀어져 갔다

하이에나가 침 흘리고

까마귀는 축하 노래를 불렀다

 

울울한 칡넝쿨 끊고 빗질 되는

수종사 예불 종소리

용진강 물 속으로

속으로 침잠했다

 

 

*차라이나:당나귀 턱뼈로 만든 타악기

 

 

 

마이삭*

                               

허연 이빨을 드러낸 파도가

뭍으로 오르자

벌떡 일어선 소나기

솨솨 소리 내며 겅중겅중 뛰어 북한강을 건너고

풍경으로 매달려 바람에 몸 말리던 잉어 신났다

 

칠흑 같은 보름밤

육 번 국도를 옆구리에 끼고

한 손에 북한강을 다른 손엔 남한강을 움켜쥔 채

노대바람을 타고 북을 향해 달린다

비는 덤이다 거칠 게 없다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은 숨죽인 지 오래

지난 자리마다 잔해들 널브러지고

할퀴어진 생채기 아리다

그만

제발 그만하길

 

가지런히 두 손 모은다

 

*마이삭 : 2020년 제9호 태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