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 시인의 詩 파꽃 외 4편
유영삼 시인의 약력
충북 청원 출생.《창조문학》등단. 2010 충북여성문학상 수상.
충북작가회의, 비존재, 새와 나무 동인, 보은문학회 회원.
시집『흙』,『돌아보다』
파꽃
파밭은 마이크를 생산하는 공장지대지
겨우내
하늘의 고음도
구름의 중음도
땅의 저음도 다 감지하지
노랑나비 살포시 입맞춤하면
개나리 민들레 꽃피워
제 숨을 곳을 건축케 하고
흰나비 호랑나비 들고 날 때마다
조팝꽃 철쭉꽃 온 산야에
제 심장 터뜨리게 하지
바람도 먼지도 온갖 색깔로 제 몸을 만드는데
아직 색깔을 갖지 못한 이여
파밭에 가 파꽃 마이크를 잡아보라
파꽃이 파랗게 질리도록 속내지름 멈추지 마라
울안에서 들판까지 소리란 소리 다 머금은 파꽃,
내 속의 멍울 파밭에도 있지 그 멍울
먼 훗날 산비탈 초롱꽃으로 피어
맑디맑은 종소리로 퍼져 나갈 수 있지
파꽃 마이크는 먼지의 걸음도 감지하지
폭설
계엄령을 내렸다, 밤새 하늘이
눈의 나라, 해독할 수 없는 두꺼운 백서
내 평생 처음이라며, 팔순 노인이 삽을 들어
마당 한편의 문장을 지워나가자
일제히 다가서는 백발의 테러, 적층을 이룬다
종
으
로
횡 으 로
젊은이는 어디에도 없고 노인과 노인이 맞서 있다
짧은 비명처럼, 말더듬이처럼 뱉어진 雪語들 층층이 굳어있다
백서가 쌓여 거대한 책이 된다
눈, 어둡고 관절 뭉그러진 노인이 문장 밖으로 물러섰을 때
햇빛이 거대한 문장을 읽어 내린다
서둘러 땅이 받아 적는다
몇 장 남지 않은 페이지 위로
새로운 문장이 씌여진다
겨울 낚시
얼음은 가장 뜨거운 방석이지
강바람은 무겁고도 가벼운 등짐
허허로움을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지
강물은 차가움의 중심에서 눈 깊게 감을 수 있지
얼음은 가장 아름다운 강물의 눈을 보여주려
제 가슴에 드릴을 들이대지
물의 눈은 무지개 색깔로 오는 물고기의 눈을 덤으로 주지
물의 눈에 내 눈을 맡기는 거지
물은 또 물고기에게 그리하여
제일 맑은 영혼의 옷을 서로에게 입혀주지
가장 따뜻한 얼음 방석을 깔고 앉음은
물고기의 그 작은 눈이 온 마음을 읽어주기 때문이지
물의 눈이 복잡한 시간을 맡아주기 때문이지
눈은 눈을 살 만한 곳으로 인도하지
저 뜨거운 얼음 방석을 깔고 앉음은
가장 아름다운 눈을 볼 수 있음이지
차가움의 중심에 가장 뜨거운 눈이 있지
흐르다, 소리
딱딱한 세포 속 응집된 소리
내지르다 토해내다 목젖을 잃은 이여
수천 도의 불속에서 불이었다가 물이었다가
쇠였다가
수억 만대의 매질에 뼈대를 내준 연체동물이여
쇠되 쇠가 아닌 소리시여
이제 내줄 것 없으니 품을 수밖에
세상 만물 만상 만음 보살의 몸과 보살의 염불까지
그리하여 고요타 못해 적막한 이여
당목이 당신의 목젖이 되고
스님의 도포가 바람이 되니
산이었다가 물이었다가
공이였다가 무였다가
못
두들겨 맞는다 내리치는 쇠망치에
불꽃이 튄다, 못의 눈
안으로 안으로 울리는 통증
콘크리트 벽 속 깊이 박힌다
시멘트 가루 붉게 흘러내린다 그 위로
흑백사진 한 점 걸린다
그 먼 길 자식을 앞세우던 날
늙은 어미의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도
도려낼 수도 없는 통증은
끈끈한 점액질로 뒤엉켜 옹이로 박혔다
수많은 날 햇볕이 녹아 그 속에 들면
고통도 눈물도 맑고 투명한 사리가 될까
빛을 잃고 쓰러진 저 산기슭 노송처럼
어미도 무덤의 어둠 속으로 내려가
복령을 키우리라
못 박힌 가슴, 저 땅에 또 못이 된다
산다는 건
서로의 가슴에 못을 박아 놓고
뜨거웠던 생 한 오라기 걸어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