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이서화 시인'


이서화 시인의 詩 흔들리는 균형 외 4편

이서화 시인 약력

 

2008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시집굴절을 읽다』『낮달이 허락도 없이

기행시집밍글라바 미얀마나자르 본주공저.

20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지원금 수혜.

 

 

흔들리는 균형

 

 

물지게를 기억하시는지

아무리 가득 담아도 출렁출렁 흘리던 걸음

균형 하나가 제대로 잡히기까지

온전한 물통 속의 물은 손실이 크다

그래서 더욱 가득 담아졌던 물

미리 흘릴 균형까지 고려하고 담았었다

담긴 양이 제각각 달라도

물통에 남아 있던 물은 늘 같은 양이었던가

균형은 어깨와 발걸음의

출렁거림이 아니라

물통의 그 수위에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그때

나의 균형은 다 흘러넘쳤다

빈 것들의 속내일수록 휘청거리기 쉽다

더 이상 흘려버릴 균형추가 없는

나이가 될수록 균형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

가령, 팔이 자꾸 안으로 굽는 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다툼 사이에서

균형은 또 그때처럼 흘러넘친다

 

, 바람이 출렁거리며 넘친 벚나무는 이미 바닥이 났고

평행을 유지하던 몸,

출렁거리던 옛 기억들도 감흥이 없다

그때, 오래도록 물이 다 새어나간

어깨가 살처럼 아프다

 

 

 

 

황태 날다

 

아가미를 벌리고 큰 추위들이

황태덕장으로 실려 와

겨울이 지날 때까지 온몸이 노릇하게 말라간다

내장을 비운 배 속엔 한파 특보가 가득 들어있다

추위를 먹고도 한 철을 날 수 있다는 경지

틈만 나면 뜨끈한 국물을 속에 넣기 바쁘고

그것도 모자라 한증막 열기로 몸 바깥을 데우는 사람들

크게 입 벌리고 이 겨울,

추위란 추위 모두 먹어버리겠다는

어느 지경에 이르러서 온몸 비린내 다 버리고

옅은 금빛 칠갑한 황태가 되겠다는 작심이 꾸덕꾸덕하다

 

깊은 산속을 찾아가던 바람과

준령을 넘어온 푸른 파도소리가 맛으로 드는 황태

일렬종대의 덕장 사이로 지나가는 골바람, 차가운 햇빛

어느 투박한 뚝배기 만나

쓰린 속 풀어줄 한 그릇 맛 보시報施가 녹았다 얼었다 한다

 

밤사이 또 눈이 내리고

아가미 가득 푸른 허공을 물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누군들 저 푸른 허공 한 그릇 배 속에 넣고

시원하게 속 풀어지지 않겠는가

 

겨울 내내 눈 한번 감지 않는 황태

더 이상 꼬리로는 살지 않겠다는 듯

말라비틀어진 후미 쪽으로 똑똑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다

날아오를 듯 하늘을 향해 입 벌리고

겨울 햇살 쪽으로 온몸 뒤틀며 날아오르고 있다

 

 

 

 

 

 

부론강

 

올여름 돌들이 굴러왔고

지난여름의 돌들은 다시 굴러갔다

지구의 돌들을 옮기는 강

돌은 크거나 작거나 자신의 무게가 있고

물은 원래의 수위로

넘쳤던 물을 또 불러들인다

한껏 줄어든 물로

물줄기만 이으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 있다면

그건 물일 것이다

합수머리, 수목한계선까지 밀고 올라가는

침엽수들이 호수같이 푸르다

강 옆에 사는 사람들의 말에는

모르는 라디오 주파수처럼 가을에는 지지직거리다

강은 난청을 이으며

돌 밑으로 숨는다고 한다

숨어서 지느러미 흉내를 낸다고 한다

덩달아 물고기의 지느러미들이 부풀고

눈꺼풀은 두꺼워진다

 

여름이 필요한 사람들은

무심한 듯

강의 여울목으로 나가

한껏 가늘어진 물소리를

수제비처럼 뚝뚝 끊어서 끓이고 있다

 

 

 

 

 

 

 

 

 

 

 

 

서 있는 것은 무겁지 않다

 

모든 것들은

서 있는 무게와 누워 있는 무게가 다르다

서 있는 무게들의 흔들리는 힘은

누우면 감당의 힘이 된다

 

서 있는 철근은 건물을 지탱하는 힘

자잘한 흔들림을 견디는 힘

 

그렇다면 세상의 집은

그 철근의 힘에 기대고 있는지

혹은 감당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지구에 서 있는 나무들의 무게를 잴 수 없지만 벌목된 나무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을 재면 세상의 이동하는 무게들을 잴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서서 걸어 다니면서

자신의 무게를 소진하고 간다

그런 한 사람이 죽고 몇 명의 장정들이 들어야 하는

저 무게는 사람이 사람을 버린 무게

그 어떤 미련도 없는 무게다

 

흔들림이란

지탱하려는 중심이다

 

서 있을 때 가족을 끌고 가지만

누우면 가족의 처지에 끌려가는 무게

흔들면, 흔들리는 가벼운 무게들이란

모두 서 있는 것들이다

 

 

 

 

엉겅퀴

 

엉겅퀴는 자꾸

숨으려는 색깔 같다

 

매 맞은 일을 자꾸

잊어버리려는 색깔 같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아득한 가랑이 속 운세를 떼던 여자의 눈두덩 색깔 같다

 

삼거리 지나 세 번째 파란 슬레이트집 여자, 엉겅퀴 한입 가득 물었다 아무도 모르게 뱉고 작은 시멘트 다리 건너기 전 기역자집 남자, 욕설 반 푸념 반 섞어 보란 듯이 뱉어내던 그 엉겅퀴

 

마을 사람 중엔

보라색으로 물든 이빨들이 많았다

 

엉겅퀴는 자신을 몰라서 모르고

집집들은 짓이겨진 보라색 속으로 숨고

입안에 가시들이 자라고

 

엉겅퀴는 마을의 집을 빠져나와

흔들리는 풀숲,

바람을 옮겨 다니며 욕설처럼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