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권정남 시인'

권정남 시인의 詩 연초록, 물음표 외4편

권정남 약력

 등단 : 1987 시와 의식, 2016 현대수필겨울 호 등단

 저서 : 시집 사이프러스 나무아래서다4 권 출간

       수필집 겨울 비선대에서출간

 수상 : 강원문학상 외 다수 수상 ,

 활동 : 한국문인협회 , 한국 시인 협회 , 강원문인협회 및 속초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연초록, 물음표

                             

아버님 산소를 내려오는 길

오월 , 고사리가 지천이다

 

마을과 무덤 사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흔들리고 있는

목이 긴 , 물음표들

 

 ????

      ?????    

               ??

 

산비탈에 나란히 서서

사람들 발끝에 채이며

정답이 없는 , 죽음과 삶 앞에

바람이 불어올 적마다

 

'생자필멸 生者必滅 '

입술 달싹이며 살래살래 고개 젓는

오월 , 고사리들

산 가득 , 물결처럼 흔들리고 섰는

 

연초록 , 물음표들

 

 

 

정림사 *지 절터에서

                    

풀밭에는 별들의 발자국이 수북하다

 

절이 있던 자리에 바람이 비질하고

돌아보니 폐사지 빈 강당 독경 소리

나무 깎던 대패 소리 , 정 소리 , 목수들이

수런거리며 절 짓던 소리 가득하다

 

돌조각 떨어져 나간 오층 석탑은

멸망한 도읍을 팔이 아프도록 떠받들고 있고

천 년 전 별들의 휘파람 소리 들린다

연지 蓮 池 에 얼비치다 사라지는 흰 구름은

환한 계백의 얼굴이다

 

태워도 타지 않는 불 국토

말발굽 소리 가득하다 .

 

*정림사 定林寺  : 사적 제 301 호로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정했을 무렵의 사찰

 

 

 

종이 탑

             

새벽 골목길

종이 탑이 흔들리며 간다

 

손수레 위에 힘겹게 쌓아 올린

신문지와 헌책 , 종이박스들

무너질 듯 끌려가는 공든 탑이

돌탑보다 단단하고 성스럽다

 

굽은 허리에 모자 눌러쓴

키 작은 노인 얼굴이 없다

전사 戰士 처럼 세찬 바람을 뚫고

전봇대 지나 슈퍼 앞을 돌고 나면

거룩한 탑은 한 칸씩 올라간다

 

무한 시공을 끌고 가는 저 수행자

아침을 깨우고 세상을 거울처럼 닦으며

부처처럼 정중히 탑신을 모시고

타박타박

빙판길 성지를 순례하고 있다 .

 

 

 

 

오체투지 五體投地  

                         

붉은 지렁이 한 마리가

제 몸을 오므렸다가 폈다가

낙산사 돌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

 

포탈궁 *을 향해 오르는

티베트의 승려모습이다

 

미끈거리 살점으로

제 몸의 물기를 바싹바싹 말려가며

낙산사 저 높은 해수관음보살을 친견하려고

뜨거운 돌계단에 머리 박으며 

구불 텅 , 몸부림치고 있다

 

다음 , 지렁이 몸 벗으려고

 

몸에 붉은 가사장삼을 걸친

티베트의 승려 한 분이 , 오체투지

불 땡볕 돌계단에서

고행을 하고 있다 .

 

*포탈궁 : 티베트 도시 라싸에 있는 불교 성지

 

 

 

물푸레나무의 사랑 법

                               

설악산 비선대 옆 오래된

물푸레나무를 만났네

나무는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사람들이 흘린 말소리 발자국소리에 

혼탁해진 물을 지켜보고 있다네

어둠의 상처가 깊어지면 물푸레나무는

... ...

비선대 물속 깊숙이 푸른가지를 내려

가슴에 잎사귀를 달아주며 새벽마다

물을 푸르게 키우고 있다네

 

나의 팔이 지친 너의 가슴에 닿아

너의 몸에 푸른 잎을 달아 준다면

우리들 영혼이 푸른빛으로  

세상을 눈부시게 한다면

물푸레나무가 비선대 바위 틈새에서

천 년 지킴이가 되어  

... ...

사랑하는 이 가슴에 푸른 잎사귀를

달아주는 일이라는 걸

설악산 비선대를 오르다가  

오늘 우연히 만난 물푸레나무한테 

사랑 법을 배웠네